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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Nov 02. 2020

쉬운 동양 철학 16

정약용 VS 최제우

청제국이 들어서자 신유학은 힘을 잃는다. 그러나 한반도는 사정이 달랐다. 정조 이산이 집권하던 시기, 조선은 동아시아 3국 중 유일하게 신유학의 자장 속에 놓여 있었다. 당시 조선은 소중화(小中華)의 국가였던 것이다. 세도 정치를 조금씩 준비하던 노론 계열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권을 농락하고 민중을 착취했다. 정약용이 마테오 리치와 그의 주저 <<천주실의>>라는 지뢰를 터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만물 일체와 성인이란 관념을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소중화를 표방하던 노론 계열 유학자들의 민낯을 폭로할 수 없다. 그것이 자신이 따랐던 이산이란 군주의 왕권을 강화해 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중을 착취하는 유학 관료들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정약용은 확신했다.

마테오 리치는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창조자와 심판자로서 천주 개념을 납득시키기 위해 고대 유학 경전인 <<서경>>이나 <<시경>>등에 등장하는 상제(上帝)라는 관념을 이용했다. 정약용은 <<천주실의>>에 피력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그대로 반복한다. 생혼, 각혼, 혹은 영혼 개념을 몰랐다면, 우리는 아마 정약용의 독창성을 찬양했을 수도 있다. 그는 마테오 리치와 마찬가지로 신유학의 핵심 이념, 즉 만물 일체의 이상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마테오 리치나 정약용은 만물 일체의 이상에 이리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만물 일체의 이상에 따르면 모든 만물의 수평적 유대나 연대가 긍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모든 만물을 낳고 거두어들인다는 창조자와 심판자로서 신이 들어설 여지가 없게 된다. 그러니 신에게 의존하게 만들려면, 만물들은 서로 유대하거나 연대하지 말아야 한다. 만물들은 질적으로 서로 다르니, 유대나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정약용도 개별자들의 유대와 연대를 이론적으로 원천 봉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노론 등 유학자들의 당파를 해체하는 논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수직적 질서 구조에 대한 확신은 민중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정약용은 민중 지향적이었던 사상가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마테오 리치와 마찬가지로 심판자로서 신 관념을 긍정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당연히 정약용에게도 만물 일체를 달성해서 즐거워하는 성인은 사라지고 매사에 신을 의식하며 전전긍긍하는 도덕적 주체, 혹은 두려움에 떠는 주체만 남게 된다. 정약용의 신, 즉 상제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이유는 인간의 선행을 인간의 공로로 돌리려는 신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핵심은 여전히 인간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죄를 물으려는 신의 협박이다. 여기서 결국 정약용의 자유의지도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귀결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선만 따르게 되는 자유의지로 기독교의 신이 인간에게 원하던 것은 자발적 복종일 뿐이다.

군주가 있고서 공동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있고서 군주도 있는 법이다. 정약용이 활동했던 18세기와는 달리 19세기 동아시아 3국은 서양 제국주의 침탈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군주와 기득권층은 제국주의를 막을 힘이나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상제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군주나 국가가 자신을 지켜주기를 소망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니 서학의 수직적 원리를 부정해서 다시 수평적 연대의 이념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최제우의 ‘동학(東學)’이다. 상제나 군주만을 수직적으로 응시하느라 지금까지 무관심했던 타인들이나 사물들과 수평적으로 연대하려는 노력, 이것이 바로 동학이다.

결국 최제우는 마테오 리치와 정약용이 붕괴시키려고 했던 만물 일체의 이념을 다시 복원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니 아주 당당하게 ‘서학’이 아니라 ‘동학’이라고 자신의 사상 체계를 규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수평적 연대를 꿈꾸었기에 최제우의 가르침은 상당히 민중 지향적이었다. 그가 자신의 가르침을 한문으로 된 <<동경대전>> 이외에 한글로 쓴 가사집 <<용담유사>>에도 담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나아가 최제우는 자신의 가르침을 간단한 주문으로 만들어 제자들이나 민중이 암송해 익히도록 했다. 마치 민중에게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읊조리는 것으로 충분히 극락정토에 갈 수 있다고 말했던 불교의 정토종을 보는 듯하다. 제자들이 외워야 하는 주문은 딱 두 종류다. 하나는 마음에 신령함이 깃들기를 원하는 주문, 즉 강령주(降靈呪)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중요한 주문, 즉 본주문(本呪文)이다.

강령주는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이다. 풀이하자면 “지극한 기에 지금 이르렀으니, 크게 내려주시기 원합니다”라고 할 수 있다. 본주문은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로 되어있는데, 풀이하자면 “한울님을 모시어 조화가 내게 자리를 잡으니, 언제나 잊지 않으면 만사가 다 알아질 것이네”라고 할 수 있다. 21자 주문에 최제우는 자신의 사유 체계를 모두 응축시킨다. 그러나 이 짧은 주문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머리는 복잡해진다. 주문을 외는 전통은 다분히 도교(道敎)와 관련되어 있고, 지기(至氣), 즉 지극한 기라는 표현에는 장재의 기학이 녹아들어 있다. 심지어 최제우는 마테오 리치가 사용했던 천주(天主)라는 개념마저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최제우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초월자로 민중이 신봉하는 천주를 일단 받아들인 뒤, 사실 그 천주는 자기 자신이었다고 반전의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구할 수 있는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거중기 등으로 유명한 조선의 실학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민중 친화적 학자가 아니었고 군주 친화적 학자였다니 실망을 멈출 수가 없다. <<목민심서>> 조차도 백성을 지키는 수령이 해야 할 일들을 적어놓은 것이었다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관리들의 폭정이 심해 그것을 바로잡고 국가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니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제우의 동학은 백성이 있기에 군주가 있는 것이지 군주가 있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주었다. 인내천(人乃天)으로 잘 알려진 동학은 ‘사람이 곧 신이요, 만인은 평등하다’라는 논리로 백성들에게 쉽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 시대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자체가 놀랍다.

최제우 초상화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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