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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p Nov 04. 2020

쉬운 동양 철학 18

청년 신채호 VS 장년 신채호

신채호는 40 때까지 유학자,  선비로 살고 사유했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동서양의 모든 지식인들에게는 계몽주의적 우월의식이 깔려있었다. 신채호도  엘리트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긴 유학을 배웠던 신채호가 공자의 유명한 가르침을 잊을  없었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바람이 위에서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논어>><안연> 편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이다. 결국 어떤 바람을 일으키느냐에 따라 민중의 , 나아가 전체 공동체의 운명은 확연히 바뀔 거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사람의 영웅이 가족제도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법률도 만들어서 인류를 가장 강한 동물로 만들어준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식민지 조선을 밝힐 독립 지도자를 꿈꾸는 맥락에서는 신채호의 영웅주의는 나름 납득이 가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신채호는 1907년에 <<이태리삼국걸전>> 썼고, 1908년에는 <<을지문덕전>> 썼던 것이다. 신채호는 위기에 빠진 국가나 민족을 구한 영웅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독립에 희망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등불을 들고 앞장서는 영웅, 그리고 그를 따르는 충직한 민중들. 이것이 바로 신채호가 꿈꾸던 조선 독립의 이미지였다. 물론 이렇게 모여든 영웅과 민중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곰과 호랑이 같은 맹수와 다름없다고 사유된다. 바로 여기서 신채호의 민족주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1909 5 <<대한매일신보>> 칼럼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신채호는 강조한다. “민족주의가 확대되고 웅장해지고 견고 해지는 빛을 띠면, 어떤 극렬하고 사악한 제국주의라도 감히 침입하지 못하니, 요컨대 제국주의는 민족주의가 박약한 나라에만 침입하는 것이다. 비단이나 꽃과 같은 한반도가 지금에 이르러 어두워지고 무기력하게 일본의 마수에 떨어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인(韓人) 민족주의가 강건하지 못한 까닭이다. 오직 바라건대 한국 동포는 민족주의를 크게 분발하여 ‘우리 민족의 나라는 우리 민족이 주장한다 구절을 호신부(護身符) 생각해서 민족을 보전해야  것이다.” 절절한 이야기이지만 정확한 속내는 ‘우리 민족의 나라는 우리의 영웅이 주장한다 되겠다.

제국주의에 맞서려면 민족주의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나 ‘대한 제국을 사랑하자!’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라고 아무리 떠들고 아무리 글을 써도, 지금은 민중들은 민족의식도 애국심도 갖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기득권 세력들은 아쉬울 때나 국가나 민족을 강요할 , 평상시에는 민중들을 착취하고 수탈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을지문덕과 이순신 같은 영웅들. 그리고 그를 따랐던 민중들. 그리고 마침내 위기에서 벗어난 민중들과 국가! 과거 역사의 영웅들을 영웅이 없어  길을 잃은 지금 민중들에게 중심이 되도록 한다면, 민족의식, 혹은 애국심은 다시 한번 불타오르게  거라는 확신이었다. 그의 사학은 객관적이거나 실증적인 사학과는 무관한 일종의 정신 사학이란 성격을 띠는 것도 이런 이유다. 민중들을 위기에서 건진 영웅들이 주인공이고 민중들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던 악인들이 조연인 역사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영웅들이 승리하고 악인들이 멸망하는 가치론적 역사 철학을 신채호는 지향했던 것이다.

신채호가 영웅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주의를 모두 극복하고 장년에 아나키즘에 이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먼저 동학 농민혁명,  위로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그의 체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919 3.1 운동에서 민중들은 바람에 나부끼는 풀처럼 수동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 스스로가 바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능동적이기까지 했다. 민중이 스스로 영웅 일수 있으니, 영웅주의와 같은 엘리트주의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3.1 운동 당시 33명의 민족 지도자들은 지도자로서 임무를 완수하지도 못했다. 애초 민족 지도자들은 3 1 탑골공원에서 최남선이 기초한 <독립선언서> 읽고 만세운동을 벌일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태화관이란 중국집에 틀어박혀 <독립선언서> 읽는 것으로 자신들의 임무를 마무리한다. 결국 시위에 몸을 던진 것은 학생들과 민중들뿐이었다. 신채호로서는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영웅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무거운 짐만 안기고 피해버린 형국이니 말이다.

결국 해방과 독립은 민중 스스로 해야만 한다. 다행스럽게도 스스로의 결단과 의지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과 민중들은 그것이 가능하단  몸소 보여주었다. 그러나 자유를 본능적으로 꿈꾸는 학생을  민중들은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만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도자라는 자리이지, 자유나 해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채호의 내면에서  명의 영웅과 다수의 민중이라는 도식 자체가 산산이 붕괴되고 있다. 아무리 영웅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로 미화한다고 해도, 이것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  국가 형식이나 지배 형식을 인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를 영속화하기 위해 소수는 사회의 질서를 잡는다는 미명 하에 ‘정치 이야기하고, 일순간의 승리를 군주라는 형식으로 미화하기 위해 ‘역사 만든다. 청년 신채호는 장년이 되면서 이렇게 가장 강력한 아나키스트로 변한 것이다.

신채호는 민중들 앞에서 그들을 이끈다는 엘리트주의마저 모두 놓아버리고, 민중들 앞에 서려고 한다. 3.1 운동  직접 시위에서는 한발 물러나 만세운동의 과실만 가져갔던 민족 지도자들이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일신의 편안함을 취했던 민족지도자들처럼 살아서는  된다. 지도자가 아니라 민중으로 살아가기!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꿈꾸는 아나키스트가 어떻게 다른 자유인에게 특정 행동을 지시할  있다는 말인가. 그저 몸소 시행해 다른 자유인이 자유인으로서 각오를 하도록 자극만   있을 뿐이다. <<어느 혁명가의 회상>>에서 크로포드킨도 말하지 않았던가. “비밀결사와 혁명조직의 임무와 역사적 사명은 혁명에 정신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이 준비되었을  최후의 박차를 가하는 사람은 선도적인 그룹이 아니라 사회의 하부 조직 바깥에 머물러 있는 대중들이라고 말이다.  말을 누구보다  알았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 바로 조선의 아나키스트 신채호였다.

 글을 쓰면서 신채호라는 사람을 처음 접했다.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무슨 일을  사람인지는 몰랐다. 독립을 위해 힘썼던 역사학자 정도? 그러나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신채호라는 인물에게 빠져들었다. ‘조선의 아나키스트타이틀도 멋졌지만 전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능동적으로 사유하는 민중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40세까지 유학자 씹선비로 살아왔던 그가 자신이 지금까지 배우고 맞는다고 생각해왔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스스로 정립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엘리트주의 적이고 계몽주의 적이던 그가 그런 선민의식에서 벗어나 민중과 함께 하려 했다니. 매력적이어도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다.

단재 신채호

참고 서적: 강신주 철학 VS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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