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라잡이로 유용한 책 "내 아이를 위한 다중 외국어 교육" 소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와 어른의 장점은 두 가지 이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중언어 구사는 두 가지 이상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두 언어를 구사 한다는 것은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경험, 차이에 대한
보다 많은 포용력을 주며, 인종차별주의를 감소시킬 것이다." (Colin Balker)
중학교에 들어가서 "Good morning, Tom!" 을 배울 때부터 영어에 호감을 가졌다. 고등학교 때 단어 시험을 볼 때 대충 외워가면서 봤고, 대신에 혼자서 듣기 연습을 하면서 카세트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원어민의 말을 따라해 보곤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미국에 가보고 싶다고 꿈을 꾸었다. 언어는 그 말을 좋아하는 사람의 심장에 뿌리를 내린다.
대학교에 들어가고나서 첨 한 일이 하이힐 장만(키 키우고 싶어서) 그 다음이 영어 학원 등록이었다.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발음 교정이 되어서 좋았고, 한편으론 대화에 쓰는 문법이 너무 쉽고 수준이 낮다 싶어서 놀라기도 했다. 구어에 쓰는 문법은 고급 레벨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어느 나라건 문어에 쓰는 문법이 고급이고 어려운 것이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어서 통번역 일도 해 보고, 영어 선생님으로도 일해 보았다. 그러나 외국어가 완전히 통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고, 내가 쓰는 영어 용법에 대한 확신도 크지 못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이 영어를 소화해내는 것을 보면 괜히 내가 작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나중에 나도 외국에 가서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영미권 외국에 살았다고 해서 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란 것이었다. 개인의 능력 차이와 노력 여하에 따라 개인 차가 심했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 열심히 하던 사람이 영미권으로 가야 영어 공부에서 시너지가 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9년 가량을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니 영어에 자신감이 붙긴 했다.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서, 내 영어의 약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어떤 부분은 완전히 채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어떤 부분은 계속 노력하는 걸로 어느 정도 메울 수가 있었다. 외국인 액센트가 변하지 않는 발음이 있었고, 계속해서 틀리는 문법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문법은 문법 자체가 변하기도 했다. 마치 우리말에서 짜장면과 자장면이 표준어가 됐다가 말았다가 다시 되길 반복해온 것처럼. "Contemporary"의 개념은 그래서 의미를 갖는다. 언어에 어떤 정답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시대가 인정하는" 개념이 답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공부를 마치고 (곧바로) 직장을 잡고 (이어서)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보니 아이에게 언어를 가르칠 일이 막막한 것이었다. 맨 처음 한국어를 시작할 때를 겪어보니, 한국어도 이렇게 안에 쌓이고 쌓여야 겨우 한 마디가 터지는 건데, 외국어는 대체 어떻게 저 속에 쌓아줄 것인가 고민이 이만저만 되는 게 아니었다. 내가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애가 그냥 영어를 하게 되는 게 아닌 게 자명했다. 이 일을 어쩐다 하고 걱정을 하다가, 결국 이중언어에 관해 잘 정리된 책을 몇 권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맘에 쏙 드는 책을 발견하고서 여러 번 완독하면서 다중언어 교육에 대한 자신감을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아래에 소개할 책 말고도, 자녀에게 외국어 교육의 기회를 선사하거나 자녀와 함께 외국어를 공부할 계획이 있으신 분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길라잡이 책 한 권 정도를 골라서 여러 번 읽고 체득하실 것을 권한다.
이 책의 저자인 콜린 베이커는 영국인 언어학자로서 그는 웨일즈인 부인과 결혼하면서 자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중 언어를 가르칠 것인가 고민하게 됐고, 그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언어학자로서 외국어 교육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본인의 경험담과 실패담 등이 각종 논문에 소개된 예시들과 함께 적절한 레퍼런스로 소개된 점이 내 맘에 쏙 들었다. 한 마디로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꽉 차 있어서, 어려운 이야기가 쉽게 마음에 와 닿는 장점이 있었다.
웨일즈는 지리적으로 영국과 가깝지만, 웨일즈어는 소수민족의 언어로서 영어와 결코 유사하지 않다. 내 오랜 페이스북 벗 중 한 분이 가족들과 웨일즈에서 일 년 간 생활하신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분들이 웨일즈어를 통해 웨일즈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모습을 페이스북으로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도 웨일즈어에 대해 조금 상식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역시 관심이 생기면 외국어는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게 되는 법이다.
베이커가 저술한 내용에 따르면, 유럽에는 이런 소수 언어들이 관심을 받고 있고, 그렇기에 이 소수 언어들을 보존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져 왔다. (위의 페이스북 벗님의 자녀는 웨일즈어로 말하기 대회에도 출전했는데, 웨일즈 사람이 아닌 참가자로서 유일했으며 그래서 웨일즈 사람들로부터 더 뜨거운 박수를 받은 바 있었다.) 따라서 유럽권에서 삼중언어를 쓰는 곳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가 있게 됐다. 베이커는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서 영어-프랑스어-독어를 쓰는 지방이나 북유럽 지역의 영-독-노르웨이어 혹은 영-독-핀란드어 등을 예로 들고 있다. 북유럽의 아이들은 보통 영어와 독어를 학교에서 동시에 배우면서 삼중 언어를 익히게 된다고 한다. 가정과 환경에선 나머지 자신의 민족의 말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테니 말이다. 캐나다의 퀘벡 지방에서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동시에 공용어로 채택하였기에 세 번째 언어가 유대인의 히브리어가 되거나 아니면 인디언 원주민의 언어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책이 참고한 논문들을 온라인에서 찾아보니, 더 많은 사례들이 존재했다. 카탈루냐, 바스크, 아일랜드 등이 예시되어 있었다. 아마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충돌했던 지역의 국가들은 필시 두 개 언어를 다 배우고 있을 것이고, 거기에 자신들의 토착어를 쓸 것이라 짐작된다. 혹은 영어나 프랑스어를 하나 배우고 국가의 표준어로 학교에서 교육받고 자신들의 부족 방언로 소통하는 삼중 언어 방식이 될 수도 있겠다. 이를 테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 사람들은 영어로 장사를 하고, 바하사 인도네시아 말을 학교에서 배우며, 발리 방언으로 소통한다. 이 세상은 대체 얼마나 넓은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이 여러 개 외국어를 말한다고 해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란 얘기가 된다. 다만 우리는 한국어로 말하는 환경에 몰입되어 있을 뿐,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여러 개의 외국어를 습득하고 말하고 쓸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 나와 내 아이가 함께 한국어>영어>중국어>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운이 따랐던 성공담에 대해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