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언어로 20억 이상을 만날 기회 - 영어, 중국어 그리고 인도네시아어
오늘 네이버에서 찾은 세계 인구 통계치이다. 일단 인도의 인구가 중국의 인구를 추월했다는 것에 놀라며, (우리로서는 인도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파키스탄이 5위에 있는 것을 보고 또 놀란다. 강력한 산아제한이 한 때 비공식적으로 19억이라고 말해지던 중국의 인구를 인도 바로 아래까지 내려놓았다. 그래도 14억이니 후덜덜 놀랄 일이지만.
나와 아들은 영어, 중국어, 인니어를 함께 공부하지만, 이 통계 수치를 보고 외국어 공부 계획을 세워서 한 건 물론 아니다(그랬다면 인도의 힌두어를 먼저 했어야). 공부하던 중에 어느 날, 이 말을 쓰는 나라들이 세계 인구수로 2, 3, 4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뿌듯해졌다. 세 나라의 인구수를 합했을 때 무려 20억이 넘는다! (우리나라의 5천만 인구수를 살포시 얹어보지만 크게 총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에 한 가지 큰 공통점이 있는데, "사람들이 나라 전역에 흩어져 살고 따라서 지역 언어가 발달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에는 아예 수많은 방언들이 발달하여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도록 공용표준어로 지정해 놓은 것이 중국의 普通话(Putonghua, 푸통화)와 인도네시아의 Bahasa Indonesia(바하사 인도네시아)이다.
사실 미국은 유럽인들이 인디언들이 살던 땅에 밀고 들어가서 점령하여 건설된 국가라 방언이 심하지 않다. 그저 액센트의 차이가 강하거나 동서남북 지역별로 같은 상황에 쓰는 단어가 다른 정도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도 있는데 이를 테면 국자에 설탕을 녹여먹는 달고나가 부산에 가면 족자라고 불리는 그런 식이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도 언어가 아주 다르게 분화되다니 언어란 정말 신기한 것이다. 나는 외가가 경상도이고 어릴 적에 부산에 산 적이 있어서 경상도 방언도 잘 구사하는 편인데 이런 어릴적 경험들이 재밌게도 나중에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 큰 바탕이 되어 주었다. 특히 중국어의 성조를 익히는 데에 있어, 경상도말에 있는 성조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됐다.
아까 이 세 나라의 인구수가 20억이 넘는다는 얘길 했는데, 여기에 영어를 쓰는 영국과 영연방국가를 넣고, 또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영어를 제 2국어 혹은 제 2외국어로 삼고 있는 나라까지 넣으면 그 영향력이 더욱 어마어마해진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영어를 쓰는 인구수만 놀라운 게 아니라, 그 언어가 커버하는 영토의 크기가 엄청나게 넓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세계 여행을 갔을 때 영어가 원활하게 쓰일 수 있는 곳에 가서 영어를 편하게 쓸 수 있다면 그 나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 것이고 현지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소통하게 될 확률이 훨씬 더 올라가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하자면 중국어는 중국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중국어를 배우고 난 후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중국의 공식 인구는 14억 가량이지만 이미 엄청나게 많은 인구들이 전세계에 진출해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중국어를 알게된 후부터는 외국을 방문할 때 시간이 있다면 차이나타운에 꼭 가서 한 끼 정도 식사를 하고 온다. (우리나라 짜장면집이 보통 거기에 있어서 운 좋으면 발견하고 그걸 먹을 수 있다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다.) 어느 나라건 차이나타운에는 중국식 전통이 나름대로 보존되어 있고, 동시에 현지 국가의 문화에 스며들어 가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선진국에 자리잡은 차이나타운의 경우, 보통 현지 물가보다 싸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말레이지아의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에서 하루 묵었던 날이 제일 많이 생각나는데, 야시장이 밤새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호객을 하거나 술을 먹고 큰 소리를 쳤다. 짐을 나르는 짐꾼들,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경적 소리 등이 한데 어우러졌던 그 곳은 우리나라 서울의 동대문 시장이 열 배 정도 큰 소리가 나는 우퍼를 단 것처럼 크고 북적거렸다. 그러다가 새벽에 동이 터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접고 일제히 철수했고,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밖을 나가보니 거리는 그냥 기운 빠졌는데 말 시키지 말라는 듯이 황량한 가운데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어를 아는 즐거움은 싱가폴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싱가폴 지하철에 적혀 있는 지명들이 바하사 말레이(말레이시아어)로 적혀 있는 것들이 많아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했다. 바하사란 인니어와 말레이어로 '언어'란 뜻이고, 뒤에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국가명을 넣어서 그 곳의 언어임을 밝힌다. (그들 식대로 말하면 한국어는 바하사 코레아이다.) 그런데 인니어와 말레이어는 단어도 비슷하게 쓰고 철자도 비슷하게 써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남한어와 북한어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브라질 친구가 말하길, 브라질과 포르투갈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하면 80% 정도 서로 알아듣는다고 했다. 나머지 20%는 대화 내용으로 추측이 가능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언어 공부를 거창하게 네 개 씩이나 할 생각은 물론 아니었다. 여느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것에 마음을 졸였고, 남편 일을 따라서 중국에 가서 3년 간 살게 됐을 때에는 중국어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 고전했었다. 여기까지 삼중 언어의 고비를 넘고나니, 나중에 내 일로 인해서 인도네시아에서 1년 간 살게 됐을 때엔 생활은 다소 힘들었을 지언정 언어 공부 자체는 즐거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니어와 중국어, 인니어와 영어, 인니어와 한국어, 이렇게 앞서 익힌 언어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일도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있게 여겨졌다.
3회차부터는 에피소드들로 구성을 해 볼 생각이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까... 아마 중국 상하이에서 만 네 살 짜리 아들이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로 이중언어(중국어-영어) 어린이집을 다니던 때 얘기부터 해야할 것 같다. 그 때 적어놓은 일기들을 들춰보면서 차근차근 사건들을 재구성해 볼 생각이다. 몰라서 저질렀던 시행착오들과 운 좋게 돌이킬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던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어린이들이 울지 않고 외국어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 잘 써나가 보고 싶다. 곧 만 열두 살이 되는 아들도 좋은 시도라고 찬성해 주었다. 이 모든 고난과 성취를 동시에 겪은 당사자가 ^^ 나누자고 한 이야기이니 필시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