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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Sep 22. 2024

Ep 1. 4개 국어 소년, 20억을 만날 세계

어린이도 외국어를 배울 때 힘들다

"애들은 외국어를 쉽게 배운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릴 때는 뇌가 말랑해서 외국어를 쉽게 받아들인다던가, 좀 더 직관적으로 언어를 인식해서 쉽게 말하고 듣는데 적응된다던가. 나도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아들에게 외국어 교육을 좀 시켜보자마자 그것이 대중의 오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들과 함께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내가 만났던 어린이들은 모두 다 크게 여러 번 울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하는 것이 괴롭고 힘들어서 울었으나, 어른들과 달라서 말을 못하고도 외국 어린이들과 잘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보고 어른들은 애들은 외국말 쉽게 배운다고 말했다. 안 그랬다. 애들도 어쩔 수 없어서 웃고 뛰어논 것이었다. 어른들이 마치 어쩔 수 없어서 회사 못 때려치우고 다니듯이. 그저 피할 수 없으니 애들의 방식대로 즐긴 것이었다.


상하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당연히 이제 영어유치원에 가게 될 것이고 중국에 사니 중국어도 하는 곳이 좋겠지라고 어른의 방식대로 생각했다. 아이의 정서가 어떻게 변할 지를 예측하지 못한 채, 언어 학습이라는 효율성만 고려한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에서 제일 좋다고 소문난 한 영어유치원(우리로 치면 어린이집에 해당하는)을 골랐는데, 이 곳은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 담임을 하고 중국인 선생님이 부담임을 맡는 곳이었다. 보육은 한국의 방식을 따라 시설이 깔끔하고 음식도 고급이라 엄마들 사이에서 평이 좋았다.


그런데 첫 날 버스를 타고 함께 등원했는데 교실문 앞에 도착하니 만 네 살 아이가 엉엉 울었다. 유치원에선 다 이러니 문제 없다고 했다. (그게 문제가 된다면 다들 유치원을 보내지 않겠지.) 반에는 마침 한국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가 웃음기가 하나도 없고 말수도 적었다. 아직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저 아이는 다닌지 얼마나 됐는가, 여기 잘 적응하고 있는가 물어보았더니, 잘 지낸다고 했다. 어머니가 만족하고 계신다고 했다. (잘 못 지낸다면 유치원을 보낼 수 없겠지. 유치원에 다니는 장본인이 만족하는 지가 궁금한데 나는).


아들은 그 후로 일 주일 동안 내내 울었다. 집으로 보내준 사진을 보면,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고객안내센터에 있는 한국인 여직원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잠든 모습이 올 때도 있었다. 유치원에선 다 이렇게 적응한다고 했다. 왜 다들 이렇게 애를 목놓아 울리면서까지 영어와 중국어를 아이가 습득하는 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게 너무 많았지만, 나는 경험이 부족했고 근거가 모자랐다. 일단은 괜찮다고 하는 유치원 측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정도 후부터는 상태가 조금 나아져서 가끔 아침에 함께 유치원에 가 보기도 했다. 상태가 나아진 것은 적응했다기보다는, 울어도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포기하게 됐다는 것을 말한다. 그걸 우리는 보통 '순응'이라고 말한다. 어쩐지 어쩔 수 없이 순응하고 직장을 다녔던 내 모습이 겹쳐서 아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어머니, 지나친 투사는 금물입니다만). 오전 여유 시간 내내 그 한국여자애와 둘이서만 놀았다. 서로 말이 통하니 즐거움이 있었다. 여자애는 처음 봤을 때와 달리 웃음이 환하고 귀여웠다. 아들이 와서 친구가 되어주니 저도 살만한 모양이었다. 아들은 여전히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했지만 그래도 울면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교실 생활은 어떻냐고 물었더니 애들이 잘해준다고 했다. 말이 잘 안 통하지만 중국애들이 가끔 와서 말도 걸고 간식도 나눠주는데 자기는 호기심도 생기고 친해져보고 싶은 친구도 생겼다고 했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해 답답하다고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함께 밥을 먹으며, 유치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한국여자친구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내가 문득, 친한 중국친구는 없니? 하고 묻자, 신나게 숟가락질을 하던 아들이 아주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쁜 중국여자친구가 있어. 우와, 걔는 정말 예뻐!"

맘에 둔 여자친구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우와~ 하고 감탄사를 붙일 정도로 예쁘다니 너무 신통방통했다. 벌써부터 이런 마음을 아는 거야? 너는 참 사랑으로 가득 찬 꼬마로구나!


밥을 우물거리며 아들은 진지하게 얘기를 계속했다.

"걔는 머리를 양쪽으로 묶었어. 아주 귀여워. 그리고 집에 갈 때 5번 버스를 탄다?"

너는 참으로 치밀한 남자로구나. 그런 것까지 눈여겨 봐 둔 거야? 완전 연애의 자세가 되어 있는데?

그 애의 어떤 면이 맘에 드느냐고 물어봤더니, 그 애가 하루는 자기에게 와서 자기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고서 중국말을 했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들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고. 요 예쁜 중국 아기가 우리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꽃으로 만들어 준 모양이었다.

"엄마, 걔는 내 이름도 알고 있어! 그런데 나는 걔 이름을 몰라. 같이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 (왜 그랬냐고 묻자) 나는 중국말을 못하잖아..."


시무룩하게 살짝 기가 죽는 아들에게 요 때다 싶어서, 그러면 영어로 하면 되잖아? 너도 걔도 둘 다 영어를 하니까? 엄마와 아빠를 봐. 우리가 그래서 영어로 얘기를 하는 거잖아? 기 죽지 말고 영어로 이름을 물어 봐, 하고 코칭을 해 주었다. 그러자 아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래서 우리는 그 밤과 담날 아침 쉬지 않고, What's your name?(너 이름이 뭐니)를 연습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름을 말해주면 꼭 중국말로 너 예쁘다(漂亮, 퍄오량)이라고 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영어 한 문장, 중국어 한 단어를 준비해서 간 아들은 제법 씩씩하게 유치원에 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조금씩 아침에 울고 있었는데, 그 날은 목표가 있어서인지 ㅎㅎㅎ 확실히 눈물을 덜 흘렸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명랑하게 엄마와 있다가, 버스가 왔을 때에만 엄마, 엄마하고 흐느끼며 떠났다. 단지 엄마와 헤어지는 게 힘들 뿐이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있고 헤어지는 게 싫을 뿐이다. 아직은 예쁜 여자아이들보다 엄마가 더 예뻐 보이는 아기라서.


아기를 보내놓고 유치원 선생님과 채팅으로 이 연애가 곧 벌어질 일임을 알렸다. 선생님도 이 연애사를 꼭 잘 지켜 보겠노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일러주셨는데, 우리 반에서 5번 버스를 타는 아기는 세실리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아들이 이 때 버스 번호는 영어로 듣고 행동하는 것일 텐데, 제 버스 번호를 첫 날부터 기억한 것도 기특한데,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것까지 알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걸? 아니지 대단한 보이?)


아들의 반에는 유독 예쁜 여자아이들이 많아서, 나도 우와 쟨 정말 예쁜데? 한 아기들이 있긴 했다. (세실리아는 아니었다. 세실리아는 우리 아들 눈에 우와 예쁜 아기 ㅎㅎㅎ)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여자아이는 두 명이 더 있다. 일부러 아들에게 세 명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이름을 들을 때 외울 수 있도록 해 주려고 그랬다. 특히 세실리아 같은 이름은 꼬마에게는 너무 길기 때문에 듣고도 이름을 모를 수 있었던 지라. 나중에 나는 모른 척하고 셋을 관찰한 후 누가 세실리아인지 알게 되었다. 세실리아는 아주 귀엽고 상냥한 아기였다. 내가 선생님과 영어로 얘기할 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를 함께 듣고 싶어했다. 아주 똑똑한 아기였다.


네 살 짜리 아들은 이렇게 한 달 여 동안 울면서 유치원을 다녔다. 첫 주에 목 놓아 울었고, 그 다음 주는 눈물이 줄줄 났고, 셋째 주엔 흐느꼈고, 마지막 주엔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그래도 그 와중에 한국 친구도 사귀고, 마음에 둔 중국 친구도 생겼다.


계속 보낼까 말까. 나는 갈등을 많이 했다. 그대로 두면 어떻게든 적응할 것이고 영어도 중국어도 배워낼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이가 좀 더 편해질 수 있는 곳으로 옮겨준다면 아이가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후자를 택한다면, 아이가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나는 대안적으로 어떤 교육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가?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물론 이전에 한국에서도 민간 어린이집인가 국공립 어린이집인가, 어린이집인가 유치원인가 등의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인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외국어 교육을 두고 갈등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의 소중한 유아동기가 달린 문제였다. 눈물은 그쳤고 말도 늘었다. 자 그렇다면, 계속 다니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다 하더라도 서서히 줄어가는 아이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좀 더 편하게 지낼만한 곳으로 옮겨줄 것인가. 네가 이 애의 엄마야. 어떻게 할래? 난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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