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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랄 Sep 22. 2024

Ep4. 4개 국어 소년, 20억을 만날 세계

언어 공부란 인식의 바다에 빙산을 세우는 일이다

상하이에서 지낸 첫 일 년 동안 아들은 차근차근 영어를 즐기며 배웠다. 크리스마스 발표회에서는 영어로 노래 부르는 공연도 했다. 다행인 것은 그렇다고 해서 아들의 한국어가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영어를 강요해서 배운 게 아니고 스스로 놀이하듯 습득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튼튼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가운데 영어도 자연스럽게 생활에 스며 들었다.


물론 영어만 쓰고 배우는 아이들보다는 영어 실력이 당연히 딸렸지만, 영어와 중국어까지 함께 쓰면서 익히는 삼중 언어 환경에서 이 정도면 성공이었다. 이상적으로 세 개 언어가 골고루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선택한 것처럼 엄마의 말이 중심을 이루고 나머지 언어는 천천히 성장하는 게 우리 아들에게 맞았다.


이중 언어 혹은 다중 언어를 쓸 때 뇌 발달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학술적 발표가 많다. 한 언어로 얻은 지식은 다른 언어로 쉽게 확장된다. 그리고 새로 언어를 익힐 때 다른 언어를 공부했던 경험이 적용된다. 실제로 여러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새로 외국어를 익히기 쉬워졌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갈수록 언어 배우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작년에 이 곳 발리 학교에서 다중 언어를 쓰는 가정의 학부모를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는 발리의 지역 특성 상 유독 다중 언어를 구사하는 가정이 많다. 자신을 대표하는 나라를 소개하고 문화를 나누는 날인,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에 총 65개의 국기가 걸릴 정도였다. 세미나에서 귀한 그림 자료를 얻어왔기에 여기에 나눠본다.


아래 그림들은 여러 개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에 있어서 동시다발적으로 습득하는 것과 순차적으로 습득하는 것을 비교한 자료이다. 바닷물 아래로 잠겨 있는 부분이 잠재적인 언어 능력이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물 위로 솟은 부분이 더 커지고 언어로 표현하고 활용하는 능력도 커진다. 또 두 삼각형이 겹친 부분이 메타언어 부분이 되는데 두 언어가 함께 성장하고 교접하게 될수록, 직간접적으로 두 언어가 주고받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메타 부분이 커지면서 뿌리가 단단하게 자리잡혀 가게 된다. 이상적으로는 두 개의 우뚝 솟은 언어 빙산이 흔들리지 않으며 인식의 바다에 단단히 뿌리 내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개의 언어가 단단히 얽혀 들어가며 빙산들의 덩치가 커지면 종국엔 빙산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언어를 동시에 습득하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알려져 있고, 두 언어를 순차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차선으로 보인다. 동시 습득은 가장 자연스러운 공부 방법이며 그 언어의 원어민처럼 언어를 익히게 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해서 단단한 언어 빙산들을 획득할 수 있다면 최상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엄마와 아빠가 다른 언어를 쓰는 가정 혹은 이민자 가정의 흔한 경우로서 가정과 학교가 다른 언어를 쓰는 모델 등이 여기에 해당하고 제법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다중 언어를 획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차적 습득에도 큰 장점이 있으며 동시 습득도 경우에 따라 실패할 위험이 있다. 이를 가르는 것은 바로 첫 번째 주 언어가 크고 묵직하게 자리를 잘 잡아주는 것인가의 여부이다. 만일 동시 습득이 이루어긴 하면서도 두 언어 빙산이 자그마한 모습으로밖에 자라나지 못한다면, 메타 언어 부분도 작아지고 결국 이 넓은 인식의 바다에서 어떤 언어로도 지식을 제대로 익힐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고 많다.


반면에 순차 습득의 전략을 구사할 때 첫 번째 언어 빙산이 크고 탄탄하게 자리잡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두 번째 언어 빙산을 키우는 데에만 집중하면 되는 효율적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한국어를 깊이 있게 잘 공부해 놓는다면, 그 다음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에 있어 한국어를 기준 삼아서 언어 치환을 구사하며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면 이중 언어 혹은 다중 언어가 완성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시 습득으로 언어를 배우지 못했다고 해서 (그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안타까워하거나 더 심한 경우에 포기할 것은 아니다. 나와 우리 아들이 순차적으로 네 번째 언어 빙산에 이르렀기에 자신감을 갖고 권할 수 있다.


두 언어를 사용할 때의 이점 - 미아 나카무리(Mia Nacamulli)
더 궁금한 분들에게 권하는 TED 영상 https://youtu.be/MMmOLN5zBLY?si=DPeO_JvN6Uk5xHc1


중국살이 2년 째에 접어들며, 아이의 삼중 언어는 상당히 안정감 있어졌다. 가장 희망적인 것은 아이가 아직 어리고 앞으로 성장할 날이 많이 남았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가정에서 80% 정도 한국어를 썼다. 20% 정도는 영어나 중국어로 다시 한 번 복기됐다. 아이는 가정 밖 일상 생활 환경에서 중국어를 주로 썼다. 한국 타운이란 특수한 환경 속에 있기 때문에 생활 환경에서 한국어를 쓰는 경우도 꽤 있었다.


사설 학원은 체스(영어)와 중국어 과외를 배우면서, 한국 선생님으로부터 검도, 피아노, 미술을 배웠다. 엄마인 내가 컨텐츠를 통해 외국어를 익히는 것보다, 모국어로 컨텐츠를 깊이 배우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컨텐츠는 좀 놓치더라도 외국어로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전략을 쓰는 엄마들도 많고, 이렇게 되면 확실히 외국어 공부에 효과적이다. 그런데 나는 컨텐츠 자체를 놓치지 않는 것을 선호했고, 또 모국어로 배워야 모국어가 깊어지기 때문에 예체능 학원을 모두 한국 선생님이 가르치는 곳으로 정했다.


나는 이미 우리 아이를 모국어로 교육 받는 유치원으로 옮길 때, 한국어 언어 빙산을 이따만하게 키워보기로 굳게 결심했었다. 아이가 하루의 절반 정도를 보냈던 유치원에서는 한국어 70% 영어 20% 중국어 10% 정도를 썼다. 아주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모국어를 먼저 집중적으로 늘리는 전략을 썼는데, 다행히 우리 아이에게 효과가 있었다.


유치원을 마친 후에, 전체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면서 중국어 수업을 매일 하는 초등학교로 진학하고서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지나자 다른 두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영어와 중국어가 모국어와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한국어>영어>중국어가 순서대로 크고 작은 언어 빙산이 되어 우리 아이 마음속 생각의 바다에 늘어선 모양이 연상됐다. 이제 한국어는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한국 친구들과 쓰는 말이 됐다. 수업은 영어로 듣고 중국어 수업이 매일 있었다. 한국어 40%, 영어 40%, 중국어 20% 정도로 비중이 조정됐다.


이 즈음 나도 중국어를 진지하게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가 중국어에 좀 더 쉽고 편하게 적응할 수 있게 하려면 엄마가 중국어를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회화 학원을 좀 다닌 후에 본격적으로 HSK5급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중국어 도전기는 다음 에피소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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