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늘리기 전술, 뭐든지 닥치는 대로
아들이 마음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유치원에 안착시키고나서 한숨 돌렸다. 그러고나자 내 중국어도 좀 늘려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간 체력이 부족해서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는데, 운동을 하면서 체력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어 공부로 관심이 옮아갔다.
중국어를 잘하고 싶은 첫 번째 이유는 아이 교육을 위해서였다. 아들은 중국어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라도 그러겠다 싶어서 계속 아이더러 공부하라고 채근할 수도 없었다. 집에 중국어를 쓰는 사람이 없고, 밖에 나가서 한국어가 통하는데 언어를 배워야 할 어떤 당위성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언어를 배우기 위해 중국어만 있는 환경으로 이사를 가서 애와 내가 힘들게 허덕이며 살고 싶지는 않았고.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가장 최고의 옵션은 공부를 통해 중국어를 습득하는 것이 되었다.
아이는 내가 중국어 공부를 하는 걸 보더니 약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뭐해?" 하고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오길래, "엄마 중국어 공부하고 싶어서" 라고 대답하면서 몇 단어를 보여주고 말해줬더니 그 중에 몇 개는 자기도 유치원에서 배워서 안다면서 뽐을 내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의 중국어 공부메이트가 되기 위해서 중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한편, 나의 첫 중국어 공부는 만 서른 살 결혼했을 때였는데, 그 때 한국어-영어를 하던 아내와 중국어-영어를 하던 남편은 서로에게 결혼 기념으로 언어 교환을 선사했다. 바쁘게 대학원을 다니던 둘은 9시부터 시작하던 일과를 8시로 당겨서, 아내는 중국어 수업을 듣고 남편은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 대학원 프로젝트 마감에 바빠서 서로의 수업을 대신 해 줬던 치팅 데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날들에 열심히 공부했건만, 지나고나면 꼭 그런 것들만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함께 공부하던 클래스메이트들이 대부분 학부생이라, 서로 너 띠가 뭐니 질문에서 같은 동물인 걸 확인하고 기뻐하던 파트너에게 난 12살 많은 띠동갑이야 하고 말해주자 놀래 자빠지던 얼굴도 생각난다. 파릇파릇하던 2, 3학년 학생들은 중국에 한 번 가보고 싶어서, 중국 여자친구와 중국말로 소통하고 싶어서, 등등의 상큼한 이유들로 중국어를 듣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다시 그 푸르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기 받는다는 게 이런 거로군 하고 혼자 웃기도 했다.
이 시절 중국어의 발음 기초를 쌓았고 간단한 회화 능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어려운 대화를 할 실력은 안 됐고 여전히 중국어를 더 배우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지만, 대학원을 다니는 목적 - 학위 취득 - 을 이루기위해 중국어는 거기서 멈춰야 했다. 그렇게 중국어는 기초만 쌓인 채 십 년이 흘러가버린 것이었다. 언어의 바다 위로 코빼기만 삐죽 솟아 있던 중국어 빙산을 녹이지 않고 십 년 유지한 것만 해도 애썼다고 해야 하나. 그 빙산을 수면 위로 더 크게 올려쌓을 기회가 여기 상하이에서 십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여기 내 두 번째 이유가 있었다. 다시 한 번 찾아온 중국어 공부의 기회를 잡기 위해. 내 중국어 공부에 재도전하기 위해.
세 번째 이유는 가족 간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아이가 중국어를 해야 아빠와 통하고, (비록 아빠는 집에서 중국어를 쓰려고 들지를 않으나, 대체 왜 그러는건데! 아무리 부탁을 해도 집에서 중국어를 쓰지 않는 이상한 양반 같으니!) 그래야 아이의 정서를 지켜줄 수 있다. 그리고 아빠도 이 가족에서 남이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고. 그리고 내가 남편과 직접 통하게 되면 아마도 지금보다 우리의 관계도 더 나아질 것이다. 우리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줄 생각을 안 하니 우리가 밖에서 배워오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중국어를 늘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능한 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프롤로그에 소개했던 웨일즈 교수의 책이 가이드북으로서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상하이에 있는 한국 도서관을 다니면서 다른 책들도 읽어보았다. 그 안에서 여러 자극을 받으면서 중국어를 늘리기 위한 전략을 짜냈다. 하위 전술로 내가 생각해 낸 것들, 실천하려고 애썼던 것들은 다음과 같다.
일. 중국인 친구 만나기.
맨 첨엔 어디 가서 만나겠나 싶어 포기했고 체력이 약해서 외출을 하기 힘들어서 포기했는데, 체력이 조금 생기면서 유카이 친구들의 중국 엄마를 만나보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남편과 결혼한 중국 엄마들도 나와 거의 같은 이유로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입장이라서 합이 잘 맞았다. 어떤 주말엔 한 중국 엄마 집에 가서 네 시간 수다를 떨었는데, 덕분에 몹시 피곤해서 운동도 걸러야 했던 적도 있었으나 중국어에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가끔 중국 엄마들이 몇 번 내 중국어 농담에 크게 웃기도 해서 기뻤다. 세 엄마 정도와 만나면서 두 엄마와 제법 가까워졌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외국어 회화를 늘리는 방법이 내게 적합한 편이라 중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도움이 됐다. 그러나 체력 소진이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중국어 책 읽기.
책 한 장 안 읽으면서 어떻게 언어를 늘리겠다고 할 수 있겠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게 아주 즐거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상하이에선 정통적 노력을 기울이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게 됐다. 초등학생들이 보는 쉬운 고사성어 책을 구입해서 책장에 꽂아 놓고 읽으려 노력했다. 한 바닥만 읽고 뻗기 일쑤였으나 안 읽는 것보단 나았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삼. 중국 드라마 보기.
새로 사귄 중국 친구들이 추천한 '환러송欢乐颂'을 보기 시작했다. 함께 중국어를 공부하는 엄마들과 중국어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팁이었다. 드라마를 15분 정도 보고 인터넷에서 고수가 주석 달아 놓은 포스트를 찾아 읽으며 복습했다. 물론 알아듣는 것이야 적겠지만 재미를 잃지 않으려면 속도감 있게 드라마 진도를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드라마를 재밌게 본 편은 아니었다. 나는 스토리가 풍부하고 볼 것이 화려한 한국 드라마에 익숙해서인지, 환러송을 시작하자마자 배우들의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서 드라마에 오래 집중하기 어려웠다. 요즘엔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삼국지를 넷플릭스로 한 번 봐 볼까 생각을 하고 있다. 각자 좋아하는 드라마를 정해서 거기에 푹 빠져서 보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사. 중국어 수업 듣기.
중국에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반 정도 됐을 때 체력도 나아지고 중국어도 진보하면서 큰맘 먹고 한 걸음 크게 더 내딛어 보기로 했다. 뜻이 맞는 엄마들과 함께 HSK 5급 시험 준비반을 만들어서 듣기 시작했다. HSK 시험이 워낙 엄격 근엄 진지한 시험인데다 공부할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는지라 진도가 빨리 나가진 못했지만, 공부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넘어가니 쓰기와 읽기가 현저히 좋아졌고 단어도 물론 많이 늘었다. 그리고 이 준비반을 통해 중국어 공부에 열의가 있는 엄마들을 만나 새로 친구를 사귄 것도 좋았다. 그들을 통해 중국살이나 중국어 공부법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도움이 됐고,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 있어서 서로 격려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냥 중국 사는 엄마로만 남고 싶지 않았던 우리들은 다 같이 중국어를 늘리기 위해 해 볼만한 건 다 시도해 보았다.
상하이에 산 지 일 년이 넘어가면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니, 역시나 언어 공부에 대한 열망이 꿈틀꿈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아아아, 그러나 영어를 즐겁게 닥치는 대로 공부하던 때는 벌써 이십 년 전이었다. 마흔이 넘어서 하는 공부는 확실히 딱딱한 두개골을 뚫고 넣어야 하는 지라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정말로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과연 급수 시험을 정말 볼 수 있을 것인가, 통과한다는 게 가능한 시나리오인 것인가, 매일 의구심을 품으며 학원에 갔었다.
스스로 품었던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나중에 시간이 더 흘러서 마흔 일곱살부터 마흔 여덟 살까지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할 때 찾게 되었다. 나는 HSK 5급을 저점으로 통과해냈고 중국어를 중급 이상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마흔 살 넘고도 언어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었다. 이 경험에 기반하여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 언어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앞서 배웠기에. 다만 이십 대, 삼십 대에는 머릿속에 단어나 구문을 집어 넣으면 다시 튀어나오는 일 없이 단단하게 잘 저장이 되곤 하지만, 사십 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잘 담기지 않고 금세 머리통 바깥으로 새 단어들이 튀어나오긴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집어 넣으면 들어가기 마련이다.
결국 언어 공부는 인생의 어느 시절에나 가능하다. 다만 나이 들어갈수록 내 것이 되는 속도가 좀 느려져가는 것 뿐이다. 살아가는 즐거움으로 삼고 꾸준히 새 언어를 배운다고 맘 편하게 먹으면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언어 공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