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온 편지

by 샐리 존스

2023년 10월 30일. 2년전의 아들과 내가 서로에게 보낸 엽서 두장이 도착했다.
구깃구깃해진 옆서의 앞 면에 인쇄된 중문의 주상절리와 낡은 엽서와 대비되는 선명한 우체국 직인,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아들의 삐뚤삐둘한 글씨. 그 엽서는 나를 2년 전 그때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새벽. 나는 여동생 리나와 리나의 아들 태우(9살), 그리고 작은 아들 희찬이(11살)를 데리고 담양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짐칸에는 우리의 접이식 미니벨로 4대가 나란히 실려있었다. 우리는 6박7일 동안 영상강자전거길과 제주환상자전거길을 달릴 것이다. 첫 이틀 동안은 담양에서 목포(약 150km)까지, 사흘동안은 제주도와 우도(약 300km)를 종주할 예정이었다.

길이 안좋기로 악명높은 영상강자전거길은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지만, 다행히 19일 저녁 7시 늦지 않게 목포여객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우리는 목포여객터리널에서 훼리에 자전거를 싣고 제주도에 갈 예정이었다. 승선시간 까지 여유가 있어 여객터미널 근처 모텔에 대실을 하고 아이들을 재웠다. 새벽 1시. 거센 바람 속에 배가 선수를 돌리고 드디어 제주도로 출항을 했다. 자전거를 타러 제주에 가다니. 그랜드슬램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새벽 5시가 되자, 경쾌한 음악 소리와 함께 하선 준비를 알리는 선내 방송이 들렸다. 지난 밤 옆 방의 취객들과 말싸움이 붙는 바람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해서 매우 피곤했으나 꾸물거릴 새가 없었다. 리나와 나는 얼른 아이들을 깨워 옷을 챙겨 입히고 화물칸으로 내려가 자전거를 챙겼다. 드디어 제주, 옥빛 바다를 보며 다릴 생각에 벌써 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서서히 해가 밝아오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가볍게 요기를 하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달리는 것이 바다를 가깝게 볼 수 있고, 그마나 바람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제주 종주를 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제주시를 벗어나 한적한 해안도로로 가기 전까지는 신호등도 많고 차들도 많다. 딱히 자전거길이라고 할 만한 길도 없다.

조심 조심 공용도로에 우측에 붙어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비를 잘 피하고 다시 출발했는데, '쿵'하는 소리에 뒤 돌아보니 희찬이가 젖은 길에 미끌어져 넘어져 있었다. 우리를 뒤따르던 차량이 희찬이 바로 뒤에 멈춰 서 있었다. 희찬이가 왼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뒤따르던 차에 치일 뻔한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엄마 뒤에 있는 차가 나 못봤으면 어떻게? 나 너무 무서워.."
"괜찮아. 희찬아. 안다쳤으니까 괜찮아."

이제 겨우 제주 첫날이었다. 다치지 않았으면 다시 출발해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제주에 왔는데..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다. 매일이 그랬다. 어둠 속을 달리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일출과 함께 시작을 해야 했고, 일몰이 시작되기 전까진 라이딩을 끝내야했다.라이딩 중에 해가 지면 위험을 무릎쓰고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야라를 해야한다. 아이들의 속도는 시속 15km. 자주 쉬어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이기에 평속 10km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오래 쉬지 않고 꾸준하게, 느리게 느리게 거북이처럼 달리는 것. 그 것이 우리가 종주를 안전하게 끝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평지만 있는 영상강자전거길과는 달리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은 업힐과 다운힐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낙타등이었다. 바람도 얼마나 세게 부는지 뒷바람이 불면 오르막도 내리막이 되고, 맞바람이 불면 내리막도 오르막이 되었다. 키가 작아 자전거 사이즈도 맞지 않고, 다리힘도 약한 조카 태우가 자꾸만 뒤쳐져 거리가 벌어졌다. 공도는 위험하니 기다렸다가 팩을 이뤄서 달리고 자전거길에서는 각자의 페이스로 달리기로 했다. 앞서가는 사람이나 쫒는 사람이나 너무 지치고 힘들어 어쩔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점점 말이 없어졌고, 서로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같이 즐겁자고 시작한 여행인데, 어려움이 계속되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니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고 배려하는게 힘들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희찬이와 태우도 얼굴만 맞대면 싸우기 시작했다.

제주 여행 2일차. 바다를 조금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종주길에서 벗어나 해안도로로 우회를 하기로 했다. 바닷가로 우회하는 길은 경치가 좋고 차가 별로 없다는 장점도 있지만, 중간 중간 길이 끊어져 있기도 하고 바람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는 단점도 있다. 주상절리로 유명한 중문 관광단지를 지나 해안가 쪽으로 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갔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멋진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로 서귀포항이었다. 우리가 담양댐을 출발한지 4일째. 우리의 여정에 딱 중간쯤 되는 날이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서귀포동 자구리공원. 이름도 특이한 그 공원 한가운데에는 [느리게 가는 편지 자구리우체통] 이라고 씌여진 빨간색 우체통이 하나 있었다. 리나와 나는 호들갑을 떨며 아이들을 제촉해 편지를 썼다. 엄마는 아들에게, 아들은 엄마에게. 엽서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지만, 이 엽서가 반드시 우리에게 도착할 거라 믿으며 우린 서로에게 내용을 비밀로 한 체 우체통에 옆서를 넣었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리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성산포항에서 배를 타고 우도에 들어갔다. 우도에 도착하자 마자 내가 화산송이에 미끌어져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을 다쳐, 우도 보건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아픈 것보다 꾀매게 되면 자전거를 못타게 되니, 거의 다 와서 종주를 끝내지 못할까봐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아이들을 재워 놓고, 이른 새벽 관광객이 모두 떠난 고요한 비양도에 일출을 보러갔다. 동생 리나와 바다를 뚫고 솓아오르는 태양을 온 몸으로 느끼며 함께 한다는 것에 커다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제주 마지막날에는 바람과의 싸움이었다. 섬의 4분의 3바퀴를 돌고나니 나머니 4분의 1바퀴는 바람, 바람, 바람. 그냥 온통 바람이었다. 바람을 너무 많이 맞았더니 머리가 띵할 지경이었다. 바람 때문에 자전거가 앞으로 나기질 않았다. 5시 50분까지 용두암인증센터에 도착해야 완주 스터커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에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랜드슬램이 목표인 희찬에게는 그 완주 스티커가 꼭 필요했다. 너무 너무 미안했지만 리나와 태우를 버리기로 했다. 자전거도로도 포기했다. 위험하지만 거리를 줄일 수 있는 공도로 주행하기로 했다. 아직 5시 밖에 안되었는데 짧은 해는 무심하게 우리에게 안녕을 고하는데 업친데 덮친격으로 제주시에 가까워 올 수록 차량은 급격히 많아졌다(퇴근시간). 계속되는 오르막 오르막, 쌩쌩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자동차. 후미를 봐 줄 사람도 없는데, 내가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키 140cm, 40kg의 꼬마를 뒤에 붙이고 달려야 한다. 멘탈이 흔들리고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희찬이가 나의 눈물을 볼까봐 뒤도 제대로 못 돌아보고 최선을 다해 페달을 굴렸다. '제주도환상자전거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환상(판타지)'일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환상(고리형태)'이었고, 마지막 20km를 달리는 희찬이와 나에게는 그저 '환장'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6시 10분전. 우리는 해냈다. 4일 동안 총 300km를 달려 온 우리는 용두암인증센터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제주환상자전거길' 완주 스티커를 받을 수 있었다.


희찬이와 나는 그 해(2021년) 9월 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전국의 모든 자전거길을 종주했다(그랜드슬램 달성). 4대강(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자전거길과 동해안(경북, 강원), 오천, 섬진강, 새재, 제주도환상자전거길까지.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약 2,000km 이상상 되는 길을, 마치 커플자전거(텐텀바이크)를 타는 사람들 처럼 앞 뒤로 딱 붙어 달려왔다. 사람들은 아이도 대단하지만, 엄마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내 몸 하나 챙기기 힘든 와중에 어린 아들에, 조카들에, 짐까지 이고 지고 다니며 단기간에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 대단하다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종주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엄마를 향한 희찬이의 사랑과 믿음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페달을 굴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내가 내 아들의 돗대가 되어 바람을 막아주고, 가야할 곳을 알려주었다면, 희찬이는 엄마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나를 밀어주는 든든한 뒷바람이 되어주었다.



2021년 10월 20일. 자구리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1년을 기다렸다. 희찬이의 마음이 너무 궁금해서. 그러나 편지는 오지 않았고, 어린 희찬이는 자기가 쓴 편지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희찬이의 마음은 잊혀져갔다. 그런데 그 편지가 2년이란 세월을 지나 깜짝 선물처럼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엄마.
화나게 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안 까불어서 안 넘어질께.
그리고 같이 국토종주 해줘서 고마워.
오르막길에서 응원해 줘서 고마워.
뷰 좋은 호텔 예약해주고 맛있는 음식 사줘서 고마워.
엄마 사랑해.

희찬아.
희찬이가 자전거 잘 타서 엄마랑 국토종주 함께 해줘서 고마워.
지금까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타줘서 고마워.
엄마가 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희찬이가 엄마에게 주는 사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너에게 줄께.
사랑해.
2021년. 10월. 20일.
제주도 서귀포 항에서.

희찬아!
너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었다는 걸, 2년만에 알게 되었어.
엄마는 그 때 화났던게 아니야. 너가 다칠까봐 너무 무서웠던거야.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엄마와 함께 했던 90일간의 여행을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너는 대단한 사람이고 멋진 사람이야. 흔들리지 말고 페달을 굴린다면 우린 어느새 산의 정상에 올라있을거야. 늘 그랬던것처럼. 너의 삶을 응원할께. 2023.11월 20일.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