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입장에서
[여름깃, 겨울깃]
보통 번식깃(Breeding Plumage)을 여름깃(Summer plumage)이라고 부르고 비번식깃(Nonbreeding Plumage)을 겨울깃(Winter plumage)이라고 부른다. 새들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에 번식을 하고 겨울이 되면 번식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고 깃털갈이를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계절과 상관없이 깃털갈이를 하는 새가 많이 있다. 특히 오리가 대표적이다.
왜 이런 용어가 붙었을까? 이유는 사람에게 있다. 사람이 새를 여름에 보니 번식깃이고 그래서 여름깃이라고 붙인 것이다. 매우 사람 위주의 용어라 할 수 있다. 오리는 겨울에 번식깃을 가진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여름깃이라고 불러야 한다. 겨울인데... 이게 뭐냐고... 겨울에 여름깃이라니...
과학은 상당히 보수적인 학문이다. 대부분 기존의 학문적 성취를 인정하고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발전이 없다. 언제나 혁신은 새로운 것으로부터 혹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된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으로 이건 잘못된 것이라는 게 나의 주장이다.
용어는 부르는 사람 마음대로 부르면 안 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불러야 한다. 당연한 논리다. 그리고 그게 상식이다. 따라서 여름깃, 겨울깃이라는 용어는 없어져야 한다. 대신 번식깃, 비번식깃으로 바꿔야 한다.
오리에게는 다른 새에게 없는 아주 특별한 용어가 하나 있다. 변환깃(Eclipse)이라는 용어다. 오리는 번식이 끝나면 날개깃이 한꺼번에 빠진다. 날개에 깃이 없기 때문에 날지도 못한다. 대부분의 오리는 북쪽 시베리아에서 번식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 모습을 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하는 오리가 있다.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원앙이다. 이들에게서 이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깃털갈이는 암수 모두에서 일어난다. 이후 수컷은 날개깃이 자라면서 암컷과 매우 유사한 모습으로 변한다. 이 상태를 변환깃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컷 비번식깃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걸 사람들은 변환깃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변환깃은 오리류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후 수컷 오리는 다시 화려한 번식깃으로 깃털갈이를 한다. 비로소 번식깃으로 치장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매우 짧은 시간에 나타나는 변환깃이다. 다른 새들과 매우 다른 패턴으로 깃털갈이를 해서 그런지 아니면 흔하게 볼 수 없는 현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변환깃이라는 말 그대로 헌 번식깃에서 새 번식깃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깃이라는 의미로 변환깃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역시 사람의 관점에서 용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냥 다른 새들과 마찬가지로 변환깃은 비번식깃이라고 부르면 된다. 기간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간혹 먹물들 중에는 이런 짓을 하고 뿌듯해하는 것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참 한심한 일이다. 본인 올리려고 다른 사람 괴롭히고 혼동만 생기게 하는 것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같은 맥락에서 1회 겨울깃과 1회 여름깃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역시 1회 비번식깃, 1회 번식깃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원래 뭉개는 게 특기인 사람이라 이런 식의 주장은 잘 안 하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자꾸 짜증이 나서 한 마디 하는 것뿐이다. 이런다고 바뀔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짹 소리는 내야 할 듯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