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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교육에 대한 단상(3)

환경 교육의 두 가지 화두

by 김대환

환경 교육의 두 가지 화두 - 전문성


궁금증이 많은 사람들은 사소한 모든 것이 다 궁금하다. 새들은 왜 이동할까? 새들은 어떤 원리로 날까? 새들은 왜 난 무서워하면서 갯벌에서 일하는 할머니는 무서워하지 않을까? 이런 아동틱한 의문부터 저 새의 이름은 뭘까 같은 생물학적인 질문까지 궁금한 것이 무궁무진하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다양한 생물 중 하나에 매료되면 생기는 질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어떤 사람은 그저 새들의 예쁜 모습만 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예쁜 소리만 듣고 싶은 사람도 있다. 다양성은 사람의 취양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새들이 가진 색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이 문제는 오래전부터 날 괴롭히고 있는 아주 복잡한 문제다. 새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다양한 색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새가 가진 색이 매우 미묘하여 그 색을 글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색에 대한 이름이 한글로 정해진 것도 아닌 듯하다.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된 듯 보이지만 우리나라는 미술계에서 조차 정리가 안된 것 같다. 그래서 색을 부르는 용어가 제각각이다.


전문성이란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판단한다. 정해진 규칙이 있어야 하고 그 규칙을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사용해야 하며 나중에 그 분야에 참여하는 사람도 인정과 사용이 필요한 것이 전문성의 시작이다. 난 그런 인정 필요 없고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안 쓰면 되는 일이다. 물론 인정과 사용에는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규정을 외워야 하고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귀찮은 일이다. 그래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뭘 생각하든 이게 잘못된 일인가? 어느 것은 맞고 어느 것은 틀린 일인가? 어느 쪽이 쪽수가 많으면 옳은 일이 되고, 적으로 그른 일이 되는가? 그건 아니지 않을까?


내가 하기 싫다고 너도 하지 마라라던가 그것 보다 이게 더 좋아라던가 외국에서는 다 이렇게 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해라던가 이런 몰상식한 일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우겨지고 있다. 근거라고 내놓은 것도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본인의 판단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많다. 이 부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냥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내 신념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들을 쉽게 선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이해관계가 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환경만큼 많은 분야가 합쳐져서 종합되는 분야도 드물다. 그래서 많이 알아야 한다. 단어의 뉘앙스는 우리 주변에 있는 너무나 일상적인 부분으로 보일지 모르나 원인과 결과를 따지려면 상당히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토론이 필요하다. 공부를 안 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때는 내가 회의를 하러 온 것인지 수업을 하러 온 것인지 혼동될 때가 있다. 저 사람들은 이 회의에 왜 나온 거지? 그러면서 전문성이 필요 없다고 주장을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난 이제 그런 무의미한 회의에 나가지 않는다. 그냥 니들끼리 알아서 다 해 먹어. 왜 나를 불러서 수업을 하라고 난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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