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연극 <파우스트 엔딩> 리뷰
'순간아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
국립극단의 작품 '파우스트 엔딩'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조광화 연출만의 관점을 바탕으로 재창작을 거쳐 탄생했다.
무엇보다도 파우스트 엔딩은 젠더프리 형식을 도입하여,
최초의 여성 파우스트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큰 화제가 되었다.
'파우스트'는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전 생애를 바쳐 쓴 희곡으로 잘 알려져있다.
무려 60년동안 집필한 작품이기에,
작품 전반에 걸쳐 괴테가 살면서 느꼈을법한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지만 공허함과 환멸감을 느끼는 파우스트 박사와,
그런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열정을 되돌려주겠다며
내기를 제안하는 악마 메피스토의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쯤은 호기심을 느낄만한
'인간과 악마의 계약/내기'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하여
관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우선 앞서 대략적으로 언급했듯이,
파우스트는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며 사람들의 존경과 각광을 한몸에 받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평생을 진리의 탐구에 바쳤음에도
끝이 없는 세상의 지식과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해, 환멸을 느끼며 독약으로 자살하려 한다.
그런 그녀에게 갑자기 악마 메피스토가 나타나,
젊은 날의 열정을 맛보게 해주겠다며 내기를 제안한다.
그리고 파우스트가 그 젊음을 경험하는 동안
자신은 옆에서 종이 되겠다는 것을 자처하기도 한다.
다만 이 내기에는 조건이 있었는데, 파우스트가
'순간아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
라는 말을 내뱉을시, 그녀는 내기에서 지게 되고
그 대가로 지옥에서 메피스토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잃어버렸던 열정을 되찾고 싶었던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제안을 수락하고,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에게 젊음을 돌려준다.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는,이전에는 학문에 정진하느라 등져야했던 속세의 삶을 체험해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느날, 파우스트는 아이를 가진
'그레첸'이라는 여자를 만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서약까지 하게 되지만
메피스토의 계략으로 결국 이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난다.
인간의 실수와 어리석음으로 인한 사랑의 비극을 맛보고,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파우스트는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한다.
바로 자신의 제자였던 '바그너'가 과학과 연금술을 토대로
'호문클루스'라는 피조물을 만들게 된 것이다.
호문클루스는 기괴한 외양을 지녔지만
세상의 모든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지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운 존재였다.
호문클루스를 통해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본 파우스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인간개조를 시작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인간개조는 파국으로 치닿게 되고
결국 아포칼립스를 초래하게 된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욕망과,
궁극의 지혜에 대한 탐닉은
광기와 종말로 이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의 결과를 두눈으로 모두 목격한 파우스트는 초연하고 담담하게 읊조린다.
'순간아 멈춰라, 너 참 아름답구나!'
내기에서의 승리한 메피스토는 기쁨에 몸부림치지만,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신들이 나타나
파우스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신의 구원을 택하는 대신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메피스토를 따라 지옥으로 향한다.
'파우스트 엔딩'은 내용적인 면 뿐만 아니라,
장면연출의 임팩트 역시 강렬하다.
배우들의 연기와 퍼펫들의 활용,
(특히 호문클루스는 잊을 수 없을만큼 기괴하게 제작됐다)
중간중간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시적인 노래들,
그리고 조명과 사운드 효과 역시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인간 개조 장면은
강렬한 조명과 중첩되는 사운드, 그리고
무대를 가득 채우는 광기의 에너지로 좌중을 압도한다.
파우스트가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장면의 연출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개인적으로 파우스트 엔딩은 공연 직후의 여운도 크지만,
극중 좋은 대사사 많았어서인지 곱씹을수록 기억에 남는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아무것도 없는 빈 의자와, 무언가 사라져 허전해진 의자는 같은것일까, 다른것일까?"
결핍을 느끼는 인간은 이를 채우기 위한 욕망을 지니게 되고,
무한해지는 욕망으로 인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끝까지 불완전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 극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본래 원작에서는 파우스트가 신들로부터 구원을 받지만,
조광화 연출은 그녀가 구원 대신
지옥을 택하는 엔딩을 선보였다.
완벽한 지성과 이상을 향한 끝없는 욕망은
자기 파멸로 이어질 수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의 욕망이 초래한 대가에는
그에 응당한 책임이 따라야 함을 보여주는 결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의자'와,
'무언가 사라져 허전해진 의자'가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그 허전함의 깊이는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같은 무(無) 의 상태임을 인정하며,
우리가 열망하는 것들은 완전히 채워질 수 없다는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살기 위해 의미를 붙잡았으나,
붙잡느라 움켜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며, 삶이란건 무슨 의미일까?
인간은 온전해질수 있는가?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있는 이상,
우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주어진 오늘을 현명하게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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