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에 간 옥황상제

판사, 검사, 의사 심지어 대통령까지 이긴 사나이

by 소소한 변호사

"내가 옥황상제다. 판사, 검사, 의사 내가 다 이겼다."


뭔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 것이다. 한때 OO지방법원 앞에 한참이나 걸려 있던 현수막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재판을 위해 법원 앞을 오가며 저 강렬한 내용의 현수막을 봤지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그 현수막의 주인공인 '옥황상제'를 만나게 되었다. 물론 하늘에서 만난 것은 아니고 교도소에서 피고인으로.


옥황상제의 죄명은 특수협박미수. 기차역 광장에서 연설 중이던 유력 정치인에게 다가가 낫을 휘두르려고 하였다는 것이 범죄의 내용이었다. 해당 정치인이 워낙 유명인이라 이 사건은 뉴스 여기저기에 보도되었고, 조금만 검색해 봐도 피고인이 낫을 들고 경호원들과 실랑이를 하는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1심에서 유죄판결이 선고되었고, 피고인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피고인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OOO에게 왜 가까이 다가가셨어요?"

"가까이 간 게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그럼 왜 낫을 가지고 다가가셨어요?"

"낫을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한 게 아니구요. 그 날 그냥 산소에서 풀을 베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제가 대통령이 될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있습니까?"

"대통령이 되실 분이라고요?"

"네, 제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당선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정치인들이 지금 저를 죽이려고 하는 거에요. 이 사건도 그래서 모함을 하는 거구요. 제가 판사, 검사, 의사까지 다 이긴 사람입니다."

"혹시 법원 앞에 걸려 있던 현수막... 선생님께서 다신건가요?"

"네, 제가 바로 그 옥황상제입니다."


옥황상제가 교도소에 갇혀 있다니 이게 무슨 하늘이 뒤집힐 일인가? 왜 현수막에 판사, 검사, 의사 다 이겼다고 썼냐고 물으니 예전에 병원에서 행패를 부렸다는 이유로 검사가 업무방해죄로 기소를 했는데 무죄판결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 자신이 판사, 검사, 의사까지 다 이긴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럼 신도 있고 하나님도 있고 부처님도 있는데 왜 하필 옥황상제일까? 피고인의 대답은 간단했다.


"제가 예전에 '옥황상제반점' 이라는 중국집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피고인이었지만 결국 옥황상제는 이 사건에서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을 살펴 보니 피고인이 낫을 허리춤에 숨긴 채로 연설을 하는 OOO에게 다가갔는데, 당직자들이 피고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고 피고인을 제지하다가 허리춤에 꽂혀 있던 낫을 발견하였고 피고인을 제압한 후 경찰을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낫을 허리춤에 숨겨 다가간 것만으로 협박죄라고 할 수 있을까? 협박죄는 '해악의 고지'가 있어야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 만약 낫을 꺼내서 위협하였다면 충분히 '해악의 고지'라고 볼 수 있다. 폭행죄까지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낫을 허리춤에 숨기고 다가가는 것'으로는 해악의 고지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고지'라는 것은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상대방은 낫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고, 피고인 또한 허리춤에 있던 낫을 스스로 꺼내지는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항소심에서 '낫을 허리춤에 숨기고 다가가는 행위'는 특수협박의 예비·음모에는 해당할 수 있어도 특수협박미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되었고(우리 형법은 특수협박 예비·음모는 처벌하지 않는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


피고인이 풀려난 후 나는 법원 앞에 "내가 대통령까지 이긴 사람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피해자인 정치인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이 사건은 내가 변론하여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낫을 숨긴채 누군가에 다가간 행위를 어떤 방법으로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이 타당한 것인가? 분명 무죄판결은 법조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타당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일반인의 상식으로 봤을 때 타당하지 않다면 법이 잘못되었든, 기소를 잘못한 것이든, 판결이 잘못되었든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그 잘못된 결과에 일조를 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심한 조현병을 앓고 있던 피고인이 무죄판결로 석방되어 다른 피해자를 발생시킨다면, 거기에 나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옥황상제 반점을 운영하던 젊은 중국집 사장님이, 이제는 본인을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하면서 암살이 두려워 베개 밑에 칼을 넣고 잠을 자게 되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피고인이 교도소에서 나와 누군가에게 흉기를 휘두를지, 아니면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알 수 없는 미래의 일까지 내가 책임지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입법부가, 또는 판사나 검사가 해야 할 일을 변호사인 내가 걱정하는 것 또한 지나친 오지랖이다.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일에 충실한다면, 결국 세상은 똑바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작은 일에서는 순리에 어긋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겠지만 크게 보았을 때는 순리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국선변호사는 피고인을 법적으로 도와주기 위해서 있는 사람이다. 미래의 일까지, 다른 사람의 역할까지 걱정하며 내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자의식 과잉이고 권한 침해이며 직무유기일 것이다.


비록 옥황상제 앞일지라도, 지나치게 고민하지도, 두려워 하지도, 흔들리지도 말고 내 앞에 주어진 나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리라 새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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