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사에게 최악의 순간은 어떤 때일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by 소소한 변호사

"법정구속"


아마 형사 변호사라면 듣는 순간 얼굴이 찌푸려지고 잠자리가 뒤숭숭해지는 단어일 것이다(변호사 앞에서 "법정구속"이라고 귓속말로 말하고 한번 표정을 살펴보라).


법정구속이란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사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다가 바로 구속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고기일에 징역형이 선고되면서 피고인은 법정 구속 된다. 판결이 선고되는 그 자리에서 그냥 바로 교도관들에 의해 끌려 들어간다.


이것이 두려운 이유는 법정에 들어올 때는 자유의 몸이었던 사람이 바로 영어의 몸이 되어 교도소로 가야 한다는 비참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예측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재판 결과 '징역형'이 나올 확률이 낮다는 말과 거의 같다. 징역형이 나올 것 같은 사건이라면 피고인은 이미 수사과정에서 대부분 구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뒤늦게 법정구속이 되는 경우 사전에 그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를 조금이라도 예측해서 피고인이나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얘기하였다면 그나마 문제는 덜 심각하다(물론 징역형이 100% 나올꺼라고 미리 얘기하면 피고인이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도망가지 않도록 일말의 희망을 남기며 어중간하면서도 요령 있게 구속 가능성을 전달하는게 중요하다). 그런데 징역형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하라고 한 경우라면 매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피고인의 가족들에게서 당장 연락이 오고, 야단 아닌 야단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다행인지 불행인지 피고인은 법정에서 바로 구속되어 교도소에 있으므로 직접 항의를 하지 못한다).


나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법정 구속이 몇 번 있었다.


사건은 성당의 교리 선생님인 대학생 오빠가 생일이 지나기 전이라 만 16세가 되지 않았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과 성관계를 한 것이었다. 우리법상 성인이 16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합의에 의하여 성관계를 하더라도 처벌된다. 이 사건도 미성년자의제강간죄가 적용되었다.


그냥 대략적인 설명만 들으면 구속되어 마땅한 사건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판단이 쉽지만은 않다.


피해자는 교회 교리 선생님이었던 피고인을 좋아해서 오랜 기간 따라다녔다. 피고인은 처음에는 아직 어린 피해자를 멀리했지만,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겉모습도 성인과 다르지 않았던 피해자에게 이성적 감정을 느끼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국 교제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귀는 중 합의에 의해 성관계가 이루어졌다.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임신이 걱정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고소가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사귀던 중 주고 받은 문자 내용을 보면 여느 연인들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겨우 4살 차이에 불과했다. 고소 이후에도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먼저 연락하여 헤어지지 말자며 매달렸지만 당장 수사를 받고 있던 피고인은 피해자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원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그리고 검사가 항소하였다. 나는 실형이 나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피고인에게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항소심 선고날, 징역 2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되었고 피고인은 법정 구속되었다.


"아무런 준비도 못했는데... 변호사님, 우리 OO이 어떡하죠... "

피고인의 어머니는 전화로 서럽게 우신다. 아들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들어갔다면서. 예측못함죄를 저지른 변호사는 할 말이 없다. 선고결과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선고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해 주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이다. 명백히 내 잘못이니 벙어리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승소할 수 있는, 즉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변호사를 최고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 변호사가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변호사가 재판 결과를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만약 재판 결과가 바뀌었다면 그건 대부분 변호사가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이나 사정이 바뀌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물론 상황과 사정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바뀐 상황과 사정을 잘 캐치하는 것이 좋은 변호사의 능력이긴 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뛰어난 변호사는 결과를 바꾸는 변호사라기보다는 결과를 바르게 예측할 수 있는 변호사이다.


이 사건에서 나는 뛰어난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 나는 피고인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판결 선고는 나의 권한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항상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100% 자신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가끔 피고인들로부터 변호사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나는 특정한 변호사를 추천해주지는 않지만, 승소나 패소를 100% 자신하는 변호사에게는 사건을 맡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 변호사는 과거의 나처럼 아직 경험이 부족하거나, 자기의 이익 때문에 솔직하지 못한 변호사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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