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고 돌보는 것의 의미
올해 야심차게 텃밭을 분양받았다. 내가 분양받은 것은 서울시 시민텃밭으로, 1년에 7만원을 내면 한 구획을 받아서 텃밭을 일굴 수 있다. 전부터 한 번 도전해 보고 싶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하고 한참을 고민했다. 텃밭 위치도 집에서 편도 한 시간 반 걸린다. 일주일에 한 번 가는 것으로 작물이 자라기나 할까? 제작년 서울 시내에서 화분 텃밭을 시도하다가 완전히 실패해버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일단 신청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접수오픈이 되자마자 신청했다. 텃밭 개장 날, 서울시에서 나누어준 상추 모종 24개를 심고, 열무와 당근 씨앗도 뿌렸다. 그리고 텃밭을 해 본 직장 동료가 감자는 쉽다, 심기만 하면 된다길래 감자도 사서 심었다.
밭에 모종과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되는데도 이것도 꽤 힘든 일이었다. 씨를 심을 때 한 구멍에 2~3개씩 심으며 간격을 줘야 한다지만, 하다 보니 힘들어 ‘나중에 솎지 뭐’하고 대충 뿌리며 줄뿌림을 했다.
싹이 나고 보니 내가 너무 빽빽하게 뿌려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솎아 내는 수 뿐인데, 초보 농부에게는 솎는 것도 어려웠다. 왜 솎아야 하지? 어느 정도로 솎아야 하는 거지? 언제 해야 하는거지? 인터넷을 찾아봐도 영 모르겠어서 그냥 마음대로 했다. 자라는 건 너의 운명이겠거니, 하면서. 잘 솎아 주지 않은 결과는 수확 때 알 수 있었다. 나는 솎는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었다.
솎을 때 제일 튼튼한 것 하나만 남기고 뽑아 주라고 한다. 나는 ‘제일 튼튼한 것만 남기고’ 라는 말에만 집중했다. 대체 뭐가 제일 튼튼한 거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선별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니 솎는 게 어쩐지 나머지를 버리는 것 같고 좀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나 솎음은 자라나는 작물에게 공간을 주는 것이었다. 충분히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일. 잘 솎아주지 못 해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당근의 상태를 보자. 더 크게 자라지 못했고, 울퉁불퉁해졌고, 어떤 것은 두 개가 마치 연리지처럼 얽혀 있기도 했다. 사람도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듯이, 땅 속에도 필요했던 것이었다. 내가 너무 아무 생각 없이 둬서 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했구나 싶었다.
당근을 심을 때는 땅을 아주 곱게 갈아서 잔돌까지 다 골라 내야 한다고 한다. 돌이 있으면 그걸 피해서 뿌리가 자라기에 당근이 곧아지지 않고 울퉁불퉁해진다. 울퉁불퉁하면 뭐 어때, 싶지만, 먹을 수 없는 심지만 너무 커지기도 하고, 울퉁불퉁 갈라진 사이가 썩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울퉁불퉁한 것은 ‘품질은 같은데 모양만 안 예쁜’ 그런 차원이 아니라, 실제로 품질이 낮을 수 있다.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썩은 당근을 보면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못난이 농작물은 실제로 품질이 더 낮을 수 있구나. 보기 좋은 예쁜이 농작물을 만들기 위해 심기 전부터 기르고 수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이 가야 하는지 몰랐는데, 예쁜이 농산물은 엄청난 수고의 결과였던 것이다.
내가 했어야 하는 것은, 이 아이들이 잠재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충분한 공간을 주지 않아서, 때맞게 물을 뿌리지 않아서, 때맞게 잎을 따 주지 않아서, 잡초를 잘 뽑아 주지 않아서 이 아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망했구나. 하나 하나가 더 잘 될 수 있었을 텐데....... 어쩐지 미안하다.
그래서 농사를 자식 키우는 것 같다고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