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것, 가장 필수적인 것은 대개 공짜다. 햇빛, 바람, 공기 같은 것들. 그리고 내 존재의 기반은 대개 내가 선택하지 못한다. 내가 부모를 가려서 태어날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나라도, 사회도, 시대도 태어날 수 없다. 내가 만약 조금만 더 북쪽에서 태어났다면 이 나이까지 건강히 생존할 수 있었을까? 30년만 먼저 태어났다면 대학, 대학원까지 나올 수 있었을까? 내가 이 정도로 건강하지 못했다면? 나의 존재를 내가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진다.
텃밭을 일구며,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의 기쁨을 것을 다시 생각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난다. 싹이 나면 자란다. 물론 나는 남이 갈아 준 텃밭에 심고, 내가 물도 주고 김도 좀 매어 주었지만, 이 아이들이 ‘자라 준다.’ 참 기특하고 고맙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 봄에는 비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 주었다. 그 덕에 물 주는 수고도 덜었다. 비가 적당히 와 주면 사람이 물 주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작물이 잘 자라난다.
싹이 늦게 나는 아이들도 있고, 더 빨리 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열무는 싹이 나는데 감자는 싹이 안 나고. 그러나 기다리면 자기의 때에 맞게 싹이 났다. 언제 다 자라나, 싶다가도 어느 순간 무서울 정도로 자라났다. 환경이 맞아야 자라나는 것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심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것 뿐.
열무를 거두고 빈 땅에 상추, 시금치, 아욱 씨앗을 뿌렸는데, 상추 씨앗이 발아하고 나자 너무 촘촘하게 뿌린 게 보여 몇 개를 옮겨 심었다. 오전 10시쯤 옮겨 심고 물을 주고, 다시 오후 3시쯤 가 봤는데, 옮겨 심은 상추가 완전히 말라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버리는 셈 쳤는데, 며칠 뒤 비가 왔고 그 뒤에 가 보니 말라붙은 상추 잎 사이에서 싱싱한 새 잎이 나오는 것을 보며 그 생명력에 경탄했다. 그 상추는 무사히 자라 한동안 뜯어 먹었다. 놀라운 생명력!
비가 고맙고, 햇빛도 고마웠다.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잘 자라나는 작물들이 고마웠다. 내가 수고한 것에 비해 이 푸성귀들은 어찌나 잘 자라는지. 씨를 심었더니 싹이 나고, 얼추 자라나고, 비록 벌레를 좀 먹었을망정 열무김치가 되어 내 밥상에 올랐다.
성경에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이 있다.이 말의 의미를 농사를 지으며 이해한 것 같다. 내가 심고 물을 주었지만 자라나는 것 그 자체는 내 노력으로 되지 않는 어떤 ‘스스로 그러함’(自然)인가 싶다. 때로 내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 내 노력은 거들어 줄 뿐인 것.
그래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가 그렇게 ‘하늘님’을 간절히 바랬던가?
가장 중요한 것, 그러니까 자라나는 생명력 자체는 내가 어쩔 수 없다. 비도 햇빛도 어쩔 수 없다. 수고해도 자연이 맞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때로는 내 노력보다 더 잘 되기도 하는 것. 그래서 겸손해지고 고마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