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은 벌레, 잡초와의 싸움이었다. 열무는 떡잎부터 벌레먹어 구멍이 뽕뽕 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냥 쭉 길렀는데, 모든 잎이 잔뜩 벌레를 먹어 구멍이 숭숭 나 있어서 먹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농사를 하면서 먹는 풀과 잡초를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벌레 먹어 있는 풀은 내가 심은 거고, 벌레가 안 먹어 있으면 잡초.
날이 따뜻해지자 벌레는 무서울 만큼 많아졌다. 나는 농사일을 할 때 농부님들이 그렇게 온몸을 꽁꽁 싸매는 이유가 자외선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벌레 때문이었다. 별 생각 없이 팔다리가 노출된 옷을 입고 밭일을 잠시 했는데, 그 다음 날 온 몸에 엄청난 두드러기가 났다. 여름이 되면 이따금씩 두드러기가 나는지라, 이번에도 두드러기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서 팔을 보이자마자 의사 선생님이 “밭에 언제 갔어요?”라고 물어보시는 것이다. 이게 다 벌레 물린 거라고, 앞으로 밭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셨다. 나는 두 달 동안 계속 약을 먹어야 했다.
밭에 가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미 심어둔 작물을 버릴 수는 없어서, 온 몸을 감싸고 밭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밭에 안 갔죠?”하고 검사할 때마다 “네” 하고 거짓말을 했다. 벌레에 물리는 것보다 의사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이 걱정되었다. 들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물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꽁꽁 싸맸다.
면장갑을 낀 손도 벌레에 물리길래 라텍스 장갑을 끼고, 긴팔 옷 위에 착 달라붙는 쿨토시를 착용하고, 양말을 바지 위로 신고 10분 정도만에 급히 상추만 거둬서 밭을 떠났다. 김을 맬 수 없었다. 그러니 내 밭은 순식간에 잡초밭이 되었다. 마지막에는 잡초 사이에서 남은 상추를 간신히 뽑을 정도였다.
벌레에 전신을 물리고 나자 몸에 알레르기 반응이 활성화된 모양으로, 이곳 저곳 부위가 바뀌며 온통 가려웠다. 항생제를 먹으니 속도 망가지고...... 자연의 무서움을 톡톡히 느꼈다.
예전에 옻칠에 빠져 있었을 때, 옻칠수업에 다녀오면 옻이 올라 가려움에 괴로워하며 일주일 내내 스테로이드 약을 먹어야 했던 기억이 났다. 재밌는 건 건강에 안 좋다.
6월부터는 밭일을 거의 안 했으니 나의 텃밭은 생각보다 짧게 마무리되었다. 두 달간 잡초가 엄청나게 무성해졌다. 이제 8월 23일부터 재개장한다는 안내가 왔다. 하반기 밭을 계속 해야 할까? 또 약을 몇 달치 먹으면 건강에 안 좋을 텐데......
의사 선생님은 밭을 쳐다도 보지 말라고 했다. 또 피부과에 가면 엄청나게 혼이 날 텐데, 가을 밭을 할까말까 엄청 고민했다.
하지만 배추 모종 32개를 준다니 심어야지, 심어 보아야지.
이번에는 자연을 얕보지 않고 꽁꽁 싸매고 조심조심 해 봐야겠다. 목표는 수확인 아니라, 피부과에 다시 가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