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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은 인간성의 본질

by 소휘

텃밭은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7만원으로 채소를 사면, 더 좋은 채소를 더 많이 살 수 있는데. 거기다 왕복 3시간에, 가서 밭일 일구는 시간까지 하면 일주일에 최소 4시간을 써야 한다.

효율 측면에서 보면 정말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그 돈에 그 인건비면 사 먹는 게 훨씬 낫지!’라고 말한다. 맞다, 그러나 인생의 낭만은 낭비에 있지 않던가.

내가 기른 열무로 담근 열무김치 한 통. 수확한 열무 절반은 나눠 주고, 절반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하도 벌레먹어서 거의 줄기만 먹을 수 있는 지경이었다. 한참을 다듬고 절이고, 찹쌀풀을 쑤어 양념을 만들어 김치를 담갔다.

어찌 보면 50일간 씨를 심고 가꾸고 수확하고 다듬고 절인 그 모든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이 고작 열무김치 한 통이라니, 허무하기도 하다. 이 열무김치를 사 먹으면 만 원밖에 안 할 텐데.......평소 같으면 다 먹고 남은 김치 양념쯤이야 버리는데, 이건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못 하고 끝까지 뭐라도 넣어 먹었다. 그래서 예전 어머님들은 음식 귀한 줄을 아셨나 보다. 이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처음부터 다 아니까. 심고, 키우고, 다듬고 요리하는 그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직접 했으니까.

성과가 있어 뿌듯하기도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낭비했기에 이 김치가 귀하다. 성과가 아닌, 낭비 때문에.

KakaoTalk_20250826_082519153.jpg 50일간의 노동으로 얻어진 열무김치 한 통


예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 성과 없이도 그냥 하는 거, 그런 게 있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 같아.”


우리 사회는 무척 성과와 효율을 중시한다. 어느 정도이냐 하면, 취미활동도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네요..... 최근 러닝 동호회에 들어가긴 했는데.....같이 하는 다른 사람들은 10km 뛰는데 저는 5km도 못 뛰거든요.....”

또는,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다.

“○○가 취미이긴 한데....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말 찐인 분들이 계셔서, 제 지인 누구는 자격증을 땄고, 제 친구는 △△ 대회에서 상을 탔어요”


그러니까 ‘찐’이 아니면 취미라고 할 수도 없나?


나는 무려 13년째 운동으로 발레를 하고 있다.

내가 발레를 한다고 하면 다들 “우와! 다리 막 찢는 거 아니야? 이런 자세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본다. 그런 거, 전혀 못한다. 나는 여전히 뻣뻣하고, 내가 13년을 해서 이뤄낸 유연함보다 배운 지 세 달 된 수강생이 더 유연하다. SNS에서 취미발레 N년차라는 분들이 찍은 영상을 보면 대체 어떻게 저만큼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발전이 없는 것에 너무 좌절스러워서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다. 그렇지만 요즘은 ‘발전하지 못하면 어떠랴, 몸만 안 아프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오랜 세월 끝에 얻은 나름의 성숙이랄까.

이런 나를 보면서 친구가 ‘성과 없이도 하는 게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성과와 무관한 쉼이 필요하다. 쉼조차도 ‘잘 쉬어야 해’, 취미도 ‘이 정도는 해야 해’ 같은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그냥 잘 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이런 생각을 다른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러네. 내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와이프가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게임을 해?’라고 하거든”이라고 말했다. 게임마저도 성과가 좋아야 할 자격이 주어지는 거라면, 슬픈 노릇이다.

또 다른 친구는 “나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다는 죄책감을 느껴.”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고학력에 대기업을 다니는, 상당히 고성취자이다. 자기는 무의식적으로 늘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도 완전히 즐기지 못 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생산적인 낭비하는 시간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아니 어쩌면, 이거야말로 본질이다. 무용(無用)한 비효율이, 더없이 유의미하다.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텃밭을 가꾸고, 발전이 없어보여도 발레를 하는 그 시간이 내 일상을 지탱해 준다. 잘하지 못해도, 성취가 없어도 그것과 무관하게 내게는 그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이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니까.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생떽쥐베리, <어린 왕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시간을 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게 아닐지.

아니, 시간을 쓰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소중한 것이 된다. 이름을 불러야 꽃이 되듯이.


그리고 나는 가을에 다시 밭을 매러 간다. 그 무용(無用)한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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