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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한 단에 올라간 삶의 고단함

밭에서 보낸 한평생을 보며

by 소휘

나는 차가 없어서, 밭에 가려면 버스 두 개와 지하철 두 노선을 환승해야 한다. 얼마 전, 저녁나절에 밭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옆에 앉으셨다. 할머니는 보따리와 파 한 무더기를 들고 계셨다. 앉아서도 허리를 펴지 못하실 만큼 허리는 굽어 있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가득했다. 그분의 손끝은 흙이 박혀서 갈라져 있었다. 그 손으로 몸뻬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어 세어 보시고, 꼬깃꼬깃한 지폐 속에서 천 원 짜리 한 장을 꺼내셨다.


꼬부랑 할머니는 밭에서 거둔 농작물을 좌판에서 팔다가, 다 안 팔려서 남은 파를 가지고 돌아가시는 듯 했다. 한 할머니가 꼬부랑 할머니와 나 사이를 비집고 앉으셨다. 꼬부랑 할머니는 “오늘은 파가 안 팔리네”하고 혼잣말인 듯 말을 거셨다. 그 할머니는 “얼마요?” 물으시고는 남은 파 약간을 사셨다.


농사일의 고단함을 온 몸으로 살아내신 꼬부랑 할머니. 얼마나 오랜 세월을 밭에서 보내셨을까? 밭에서 거둔 파를 이고 지고 버스를 타고 시장 구석 좌판에 가는 날을 매일 매일 반복하셨으리라. 할머니께 맡겨진 인생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허리를 펼 수조차 없게 구십 도로 굽어 버렸을까? 농사뿐이랴,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오셨을까? 할머니는 장갑도 없이 일을 하셨던 모양이다. 갈라진 손끝에는 흙이 박혔고 손톱은 닳아 있다.


일생을 고되게 일해 왔으나, 이 할머니는 지금도 일을 하고 좌판을 깐다. 재미삼아 밭에 가는 나와는 다르다. 밭은 나에게는 취미이지만, 할머니에게는 생계 수단이다. 낮잠을 자다가 햇볕을 피해 여섯 시에 소꿉장난 같은 밭으로 가는 나와, 하루 종일 이 더위에 좌판에서 파를 팔다가, 저녁 여섯 시가 되어서도 안 팔리고 남은 파를 거두어 보따리를 싸는 할머니.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민망해졌다.


내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뜨개질을 하자, 할머니는 “뭐 해요?”하고 말을 거셨다. 나의 손은 흙이 박혀 있지 않다. 햇빛에 타지 않은 매끈한 손으로 예쁜 색실을 골라 뜨개질을 한다. 할머니에게 나는 얼마나 팔자 좋아 보일까. 내가 할머니께 죄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파를 팔면 얼마가 남을까? 시장에서 파가 한 단에 삼천 원. 봄부터 쪼그려 앉아 땅을 고르고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는 그 수고의 시간이 그 삼천 원에 들어가 있을까? 우리는 노인 세대가 이 나라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 때도 산업 역군이 아닌, 쪼그려 앉아 작은 밭을 일구던 사람들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그 레토릭에 등장하는 사진은 주로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던 사람들, 악수를 하는 비즈니스맨, 그런 사람들이기에.


몇십 년 동안 할머니의 삶의 방식은 같았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는 그 수십 년 동안, 할머니는 매일 채소를 가꾸고 좌판에서 팔았을 것이다. 우리의 밥상과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성장은 그런 고단한 손이 받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버스를 기다리는 십오 분 동안 이런저런 감정이 뒤엉켰고, 버스가 오자 나도 그 모든 걸 잊어버리고 차에 올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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