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넌 해고야.”
어른이 되면 모두가 정장을 입고 ‘회사’라는 거대한 집단에 들어가는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대사가 나오면 심장이 철렁했다. 동시에 궁금했다. 회사에서 한 사람을 내보내는 게 저렇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저 사람의 자리는 누가 채우는 거지? 물론 영화 속에서 해고당한 주인공은 더 좋은 회사로 가거나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승승장구했기에 이 궁금증은 금방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해고’는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사건이나 주인공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역경이 아니다. 어쩌면 해고는 죽음과 같은 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갑작스럽게 하청업체로 파견 근무를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정은(유다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보던 정은에게 현장 파견업무를 나가라는 말도 안 되는 통보는 권고사직이나 다름없다. 정은이 일하게 된 업체는 작은 컨테이너를 사무실로 삼아 일하는, 소장 한 명과 직원 세 명이 전부인 작은 업체다. 그들의 주요 업무는 전신주를 수리 점검하는 위험한 일이고, 직원들은 갑자기 나타난 정은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소장과 직원들은 대놓고 정은을 무시하며 일을 주지 않지만 정은은 1년만 버티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 매일 출근한다. 현장업무가 아니면 할 일이 없다는 소장의 말에 그럼 현장업무를 돕겠다며 안전모를 쓰고 동료들을 따라나서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다인에게 송전탑에 오르는 일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본청에서는 해고의 근거가 될 근무평가를 위해 평가관을 파견하고, 평가관 앞에서도 송전탑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굳어 결국 땅에서 발을 떼지 못한 정은은 다시 좌절한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들 사이에서 ‘막내’로 통하는 충식(오정세)에게 송전탑에 오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고, 충식의 도움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송전탑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사실 정은의 등장은 직원들 중 충식에게 가장 달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업체에서 정은의 인건비까지 부담하게 되며 예산 부족으로 인해 근무평가 결과가 가장 안 좋은 직원은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그 직원이 바로 충식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딸들의 생계를 위해 낮에는 송전탑에 오르고 퇴근 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 일을 하는 충식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다. 하지만 충식은 유일하게 정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기도 하다. 본청에서 행정업무를 하던 직원, 그것도 우수직원으로 선발되곤 했던 정은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 배운 적도 없는 송전탑 수리 일을 해야 하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서 어떤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정은에게 충식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송전탑에서 일하면서 ‘진짜 무서운 건 사망이 아니라 해고’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은은 갑작스러운 해고 이후 결국 생을 마감한 직장 동료의 죽음을 회상하며 ‘해고든 사망이든 그게 뭐가 다르냐’고 답한다. 정은의 말대로 해고든 사망이든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같다. 아무리 간절하고 절박해도 근무평가에 매겨지는 등급 한 글자면 순식간에 해고당하고, 운이 좋지 않으면 송전탑에서 감전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정은을 번번이 좌절시켰던 거대한 송전탑처럼, ‘해고’와 ‘죽음’은 정은과 충식의 삶 한가운데에 무겁게 자리한다.
정은은 다시 회사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해고와 죽음,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르는 그 막막한 것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지만 해피엔딩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영화에서 눈을 돌려 현실을 둘러보면 여전히 수없이 많은 정은과 충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