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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원 Dec 14. 2020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해당 도서는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지원받았습니다 :) 


우리는 미술관에서 캔버스에 말끔하게 걸린, 완벽한 상태의 작품을 보게 된다. 하지만 미술 작품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때로는 훼손되어 망가지는 ‘사물’, 또는 ‘물질’이다. 그러니 미술품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2018년 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소장품들을 공개하고, 보존과학실을 운영하고 있다. 미술품의 보존과 복원 과정을 관람객에게 적극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것이 청주 분관의 특징이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보존’이라는 단어가 조금 친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미술품 보존은 미술관에서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작업인 동시에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하다. 오래전에 제작된 작품일 경우에는 작품이 제작된 시기의 안료를 구해서 보존해야 하고, 미디어 작품의 경우에는 작품에 꼭 필요한 부품이 단종되어 더는 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퍼포먼스 작업이나 설치 작업의 경우에는 작품을 어떤 형태로, 어느 정도까지 원형에 충실하게 보존할지에 대해 작가 또는 유족과의 협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하다. 미술 작품에서 단순히 그 형태뿐만이 아니라 의미와 개념이 중요한 것이 되면서, 보존은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서 저자는 미술품 보존에 얽힌 흥미로운 사례, 그리고 구체적인 보존 기법을 통해 미술품 보존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1부 ‘그림이 들려주는 복원 이야기’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흐나 뭉크의 그림 등을 통해 미술품 복원에 얽힌 일화와 복원 기법들을 소개한다. 2부 ‘미술관으로 간 과학자’에서는 미술품 복원에 과학 기술이 사용되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며, 3부 ‘미술관의 비밀’에서는 작품 보존과 관련되어 미술관에는 어떤 시설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보존하는지를 설명한다.


Vincent Van Gogh, The Bedroom, 1888                                                

대중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그림인 고흐의 <침실>은 총 세 번 그려졌다. 1888년 고흐가 아를로 이사를 갔을 때 한 번, 1889년에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또 한 번, 그로부터 3주 뒤에 가족에게 선물하기 위해 비교적 작은 크기로 또 한 번 그렸다. 이 세 그림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침실의 바닥과 벽, 침대, 가구의 색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각각의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한 물감도 다르다. 게다가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림에 사용한 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그림을 보면 편지에서 묘사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이 제작되고 130여 년이 흐르면서 그림의 색이 변한 것이다. 고흐가 사용했던 물감이 무엇인지 분석하여 어떤 색상이었을지 유추할 수는 있지만, 그 색상이 정확히 어떻게 보였을지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보존이 가진 한계와 어려움이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미술품의 보존은 역사를 추적하는 고고학과 과학이 결합된 흥미로운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미술품을 그것이 제작되었을 때의 상태에 최대한 근접하게 돌려놔야 하기 때문에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은 고고학∙역사학과 닮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를 추적하는 것과 작품이 거쳐온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 사이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된 내용은 ‘뭉크와 보존가의 절규’ 챕터에서 볼 수 있다. 

Edvard Munch, The Scream, 1893

뭉크의 <절규> 중 1893년 작에는 여러 얼룩이 묻어 있고, 표면이 긁혀 있기도 하다. 1910년 작에도 큰 얼룩이 남아 있다. 사실 뭉크의 회화에서 그림이 손상된 흔적은 작가의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뭉크는 의도적으로 회화를 야외에 걸어 두고, 비바람을 맞으며 손상되도록 했다. 그러니 뭉크의 회화를 얼룩 없는 빛나는 상태로 보존하는 것은 작가의 의도를 해치는 것이다. 반면 1910년 작에 남은 얼룩은 미술품 도난의 흔적이다. 2004년 뭉크미술관에서 도난당했던 <절규>는 2년 후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왔고, 2년의 보존 과정을 거쳐 다시 전시되었다. 미술관은 아픈 도난의 역사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얼룩을 남겨놓았다고 설명했다.   


저자가 과학과 미술품 복원을 전공한 보존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보존 기법을 알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중적인 명작을 사례로 들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서 작품의 저작권 문제나, 뉴미디어 아트 등 새로운 매체를 보존할 때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고 있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술품 보존∙복원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분야가 아니며,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국공립 미술관에서 보존∙복원 관련 기획전시를 개최한 사례도 있지만 여전히 박물관/미술관의 보존 업무는 전시, 교육보다 관람객들에게 잘 가시화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존과 관련된 내용이 마치 미술품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보존∙복원에 대한 내용이 대중에게도 더 잘 알려지고 국내에서도 미술품 보존 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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