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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함이 주는 공허한 평화로움

간병이 능숙해져가는 나, 상황을 받아들이는 아버지, 대학을 준비하는 엄마

by 커피 한잔의 여유

285번째 에피소드이다.


모처럼 주말 간 엄마에겐 집으로의 휴가가 주어졌다. 나와의 교대는 엄마가 간병에서 잠시잠깐 벗어나 집안일을 하는 공허한 평화로움을 맞이할 수 있다. 집안일도 고되지만 반복적 패턴이 지속되는 간병보단 가끔식은 더 나을 수 있다. 그리고 새벽에 한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으니 공허하지만 평화로움 그 자체는 맞다. 난 지금 아버지의 간병을 하면서 대소변을 치우고 기저귀를 갈고 난 시점에서 글을 쓰고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엄마의 단조로움을 이제는 내 적당한 능숙함이 대신한다. 아버지는 크게 두가지 면에서 진일보하였다. 먼저 1여년전보다는 재활을 꾸준히 하면서 다리에 근육도 붙고, 신경이 일부분 돌아왔기에 동작의 구현자체가 억지스럽지 않다. 그 다음은 워낙 낙천적인 사람이기에 마인드는 유지하되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원래부터 부정적인 마인드가 전혀 없던 사람이었지만, 무조건 빨리 재활해서 두다리로 온전히 벌떡 일어나 나를 찾고 있는 사회로 복귀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재활이다보니 그 속도를 조절하면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러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현실적 목표를 세운 모양이다. 나는 이런 모습이 훨씬 더 재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전부터 노트북을 사달라고 아우성이다. 내가 몇번 노트북으로 사회와의 단절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설파한 것이 주요한 것 같고 또 학기가 시작하고 온라인 강의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온라인 강의 촬영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본인의 잠시 멈췄던 경제활동을 재개하고 싶은 마음이 큰 모양이다. 내가 노트북으로 구입해서 온라인 강의 촬영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설치한 풀세팅 기기를 언제까지 준비하면 되겠냐고 하니, 설 연휴 전까지는 준비해서 본인한테 구현 방법을 철저하게 교육시켜줘야한다고 신신당부를 한다. 평생 온라인의 '온'자도 극도로 멀리해왔지만, 이제라도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고 내재화하려는 아버지의 삶을 응원한다.


엄마는 이제 곧 고등학교 졸업식을 하고, 대학을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전공은 사회복지학과이다. 어쩌다보니 우리 가족 중에서 사회복지 영역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고 있다. 국가자격증인 요양보호사부터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면 말이다. 나같은 엉터리 전문가보다 훨씬 더 권위가 철철 넘쳐흐른다. 여러 고민거리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론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생들과 마음 맞춰 가기로 한 대학의 전공학과로 가게 되었다. 그 무엇보다 엄마에게 친구가 생겨서 너무 다행이다. 평생 새벽부터 밤늦게 하는 일에 지쳐있어서 그 흔한 여행도 제대로 못가서 추억을 공유할 친구가 없었는데, 뒤늦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친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아까 올해 그러면 경제활동으로 복귀하는 아버지,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는 엄마가 어떻게 각자 가장 효율적이면서 빈틈이 생기지 않은 우리 가족의 동선을 재확인 차 물어봤더니, 아버지가 일정시간을 엄마의 도움없이 혼자 재활훈련을 하며 시간을 보내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엄마도 이제는 공식적으로 투잡을 뛰게 된 것이다. 낮에는 대학생, 밤에는 간병인. 그거 만만치 않은 도전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엄마는 결국 잘 해낼 것이다.


나 역시 이따금 능숙해져서 공허한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마치, 내가 소설 속에서 위기와 역경들을 마주하고 견뎌내다가 반드시 이겨내는 주인공의 비장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그저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영케어러 중 하나일 뿐이고 그나마 상황도 낙관적이고 병원비나 직장포기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기에 그저 주어진 운명을 마주하고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능숙함을 내재화 할 뿐이다. 올해 기지개를 켜고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내 삶은 Linear하기에 그 일부분이라는 현실자각을 하며 우리 가족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낼 뿐이다. 다만, 가끔식 몰려오는 공허함에 저항하기 위해 나 자신의 능숙함을 넘어선 의연함을 기르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따금씩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그 전쟁 속에서 항상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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