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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성인학습자와 살고 있다.

엄마가 이같이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교육 방벙론을 평가한 적이 있던가?

by 커피 한잔의 여유

295번째 에피소드이다.


요새 꽤 일이 많아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매번 하는 고민이지만 바로 러닝을 하러 갈까 아니면 좀만 쉬다가 갈지말지 고민해볼까 하는 시대적 과업 앞에 난 또 침대에 벌러덩 눕고 말았다. '아.. 또 지고 말았다.'하는 찰나에 엄마가 내 방문을 똑똑 두드린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엄마가 내게 카카오톡을 내밀며 친구 목록이 안 뜬다며 이거 이상해졌다며 고쳐달라고 한다. 나는 "엄마, 이거 2주일 된 막장 트렌드에요 ㅎ! 이거 그냥 이렇게 변한거에요."하면서 그나마 친구목록을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 이마저도 그나마 카카오톡 유저의 원성으로 이렇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뒤끝을 보여줬다. 친구목록을 보이며 엄마가 다니는 학교의 교강사 분을 나에게 자랑한다. "이 분은 참 잘 가르쳐, 발표자료가 눈에 쏙쏙 들어오고 엄마들이 딱 알아듣기 쉽게 한단 말이지." 그 이야기에 갑자기 내가 흥미가 생겼다. 자세를 고쳐앉아 엄마에게 "그러면 못 가르치는 교강사 분은 누가 있어요?"라고 되묻는다. 나 역시 이 분야의 강의 3년 경력을 자랑한다.


엄마가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특정 분야 파트를 딱 지명했다. 그리고 내게 "엄마가 한번도 화가 안났는데 정말 화가 나더라. 수업하는데 계속 발표자료에 줄을 치고 따라 읽으라고만 하지 않나, 따라 읽다가 목소리가 작아지면 목소리 작아진다고 더 목소리를 높이라고 하질 않나.. 정말 화가 나서 말이야." 평생을 주어진 환경에서 불평보단 순응과 버티기가 익숙했던 엄마가 보인 반응이 흥미로웠다. 이어서 "시험을 치는데 말이야, 시험지 반을 접어서 읽어주는대로 서술형1,2.. 받아적으라고 하고 다음 시간에 수업와서 중간고사 시험을 단 한명도 제대로 친 분들이 없다고 하는데 기분이 팍 상하더라고, 그래서 손 들어서 물어봤지. 서술형을 어떻게 쳤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가르쳐주지 않고 그렇게 하니깐 화가 나더라고" 나는 그 말에 적잖이 놀랐다. 엄마가 손을 들어서 직접 교강사 분에게 질문을 했다는 것이 상상가질 않았다. 엄마는 항상 가족을 위해서 참고 또 참으며 사는게 일상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이지만 또 한번 던진다. "그래서 학비 내고 학교 다니는 이유가 뭐에요?" 라는 말에 "예전에 학교 못 다닌게 평생 부끄러웠는데, 내 며느리한테 시어머니가 대학도 못 나왔다고 말하기 싫어서. 그래서 늦어지만 삶을 마치기 전에 무조건 공부하려고."라고 말한다. 그러니 엄마는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큰 사람이다. 미숙하고 낯설지만 그걸 몸소 자신에게 내재화하려고 노력하기에 명확한 교육 방법론의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내가 슬쩍, "아니,, 그 분 싫으면 방법 하나 알려줄까요?"라며 웃는다.


"강의평가할 때 굉장히 적나라하게 작성하는거에요."


엄마가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묻는다. 그게 뭐냐고,, 성적표 보지 않았냐고 하니 조교에게 직접 받았단다. 헐.. 냉큼 통합정보시스템을 만들어 성적표 확인 방법을 알려준다. 그 성적을 보기 위해서 강의평가를 할때 한학기 교강사에게 느낀 점을 상세히 기재하거나 점수를 준다. 일종의 '반격의 서막'이다. 근데 나는 또 한번 이것을 몰랐음에도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교강사에게 정확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던 엄마의 용기가 멋있었다. 그게 결국 진정한 '용기' 아닌가. 특히 엄마의 삶과 인생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분이라면 그녀에겐 정말 최고로 용기를 낸 것이란 알거다. 그리고 나를 한번 돌아보았다. 3년 간 그래도 성인학습자 분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공부하고 성장했다고 했는데, 나는 좋은 교강사였는지 궁금했다. 내 교수법은 항상 처음엔 어렵지만 꼭 유용하고 토론 위주라 재밌고 실무 중심적이라는 용두사미보단 용미사두에 가깝다고 자부했는데 다시금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동기, 즉 수요가 반영된 교육 방법론은 무엇일까? 결국 공급자(전문가)만이 아닌 공급자(전문가)+수요자(교육수용자) 중심의 교육이어야 입학과 더불어 졸업할 때도 사회에 걸맞게 취업과 창업, 학문 연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입학할 때의 웃음의 의미(친근, 교우)와 졸업할 때의 웃음의 의미(성취, 실질 기술습득)는 분명 다르지만 두가지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숙명이다.


엄마와 오랜만에 깔깔거리다가 잠이 확 달아나, 침대를 박차고 나가 러닝화를 신고 오늘도 달렸다. 재미있는 대화만큼 엔돌핀을 돌게 하는 건 또 없다. 나는 한 성인학습자와 살고 있다. 그 가운데서 평생교육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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