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실력, 장자를 읽고.
최진석 교수님의 책을 좋아한다.
복잡하고 불투명한 세상을 단순하고 투명하게 정리해 주는 작업을 해주신다.
책을 읽으면서 다음장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문구를 마음속에 되새기어 본다.
따끔하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음을.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나의 시간을 멈추어 본다.
나를 따끔하게 하고, 나의 시간을 멈추게 했던 문장들을 나눈다.
삶의 목적, 무소유의 진짜 뜻, 존재를 존재답게 하는 질문의 의미까지.
이런 문장들이 여러분들의 시간도 잠시 멈추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1. 삶의 목적
삶의 목적은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영혼이 병들지 않고서야,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기 삶의 터전을 소홀히 대하고, 자기를 파괴하고, 자기 생존의 질과 양을 줄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어떤 철학자도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려는 일에서 벗어난 경우는 단 한 명도 없다. (6쪽)
2.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부터 장점과 취약성을 동시에 가진다.
장점과 취약성은 상호 의존 관계에 있어서, 어느 단계에 이르면 취약성은 장점이 날아오를 높이를 제한한다. 한국은 지금 장점이 최고로 발휘되어버리고 난 후 한계에 갇혀, 취약성이 장점을 누르기 시작한 상황이다. 취약성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유의 종속성이다. 우리의 삶을 스스로 생각해서 산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한 생각의 결과를 따라 하며 살아있다는 증거다. 사유의 생산자가 아니라, 사유의 수입자로 살아온 것이다. (7쪽)
3. 도
인간 앞에 펼쳐지는 역사 속에서 이제 인간은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인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의 능력으로 인간이 가야 할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 여기서 인간만의 능력이란 생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인간은 이제 자신이 가진 생각하는 능력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이 인간만의 생각하는 능력으로 만든 인간의 길을 ‘도’라고 했습니다. (26쪽)
4. 자쾌 (장자의 기본개념 :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일)
여러분은 지금까지 바람직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셨어요? 자기가 바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셨어요?
해야 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까? 하고 싶은 것이 더 중요했습니까?
좋은 것을 찾아 헤맸습니까?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맸습니까?
‘바람직함‘, ’해야 함’, ’ 좋음’ 에는 내가 없습니다.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라는 것’, ’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있습니다.
어디가 더 나의 내적자발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따져보는 일. 자쾌입니다. (61~62쪽)
5.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 = 자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따로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비교에 빠지고, 남이 좀만 앞서가는 것처럼 보여도 조바심이 나거나,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조금만 앞서가는 거처럼 느껴지면 바로 우쭐댑니다. 다 자신의 삶을 어렵게 하거나 망가뜨리는 태도입니다. 그들도 그들의 시간을 살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살뿐입니다. 집단적으로나 습관적으로 정해진 시간대에 자신의 삶을 맡기고, 그것에 평가받으며 울고 웃을 일이 아닙니다. 자신만의 시간대를 당당하게 살면서 주위에 흔들지는 않는 것이 ‘자쾌‘와 배우 비슷해 보입니다. (64쪽)
6. 자세히 살피는 능력 VS. 판단
자세히 살피는 능력이라는 것이 극소수에게만 허용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인식의 틀, 그리고 자기가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인식의 틀을 작동시켜 ’ 판단’ 합니다. 자세히 살피는 것을 ‘본다’ 혹은 ‘살핀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판단하는 사람은 넘쳐 납니다. ’ 판단’은 대개 기준을 적용하는 일이고, ‘본다 ‘는 어떠한 선험적 기준도 없이 대상에 접촉하는 일입니다.
‘판단’은 시선이 대상에 닿기 전에 이미 있는 인식의 틀을 사용해서 ‘저것은 무엇이다. 저것은 어떻다 ‘라고 결정하는 일입니다. 판단할 때는 시선이 대상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와 버립니다. 거의 모든 시시비비와 선악은 이처럼 판단의 형식으로 결정됩니다. 이치가 이러하다면, 사람이 자기 시선을 대상이나 사건에 갖다 붙이는 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더해서 집요함까지 발동하여 시선을 그 대상에 오래 머무르게까지 하니 얼마나 더 대단합니까? (73~74쪽)
7. 무소유
우리는 흔히 ‘무소유‘라고 하면 재산을 갖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 그것이 아닙니다.
무소유는 이 세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정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재산을 갖는 것, 혹은 안 갖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계를 내 뜻대로 정해서 관계하려는 소유적 태도를 부정하는 것이죠. (88쪽)
8. 미완의 미학
이야기는 완결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미완결 상태로 손을 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자가 거기에 최대되어 참여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완결을 독자와 함께 하는 것이죠. 그러면 감동이 배가 될 수 있습니다. (99쪽)
9. 얇고 딱딱한 도덕주의자
가치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면, 언제나 선한 사람과 선하지 않은 사람으로 쉽게 나눕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덕을 신실하게 만드는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덕이 신실해지지 않으면 궁금증이 들지 않아서 세계(사실)를 궁금해할 줄 모르게 되어, 결국은 정해진 가치에 빠지는 쉬운 길을 택함으로써, 얇고 딱딱한 도덕주의자로 전략해 버립니다. (153쪽)
10.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선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되는 이유는 그 선이 그 사람만의 선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선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의 내면은 스스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자신의 선만을 선으로 알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선에 조금이라도 안 맞는 것은 쉽게 악으로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도적주의자가 도덕으로 세상을 괴롭히고, 정의를 자처하면서 오히려 세상을 부정의의 혼돈에 빠뜨리며, 선한 삶을 강조하다가 악으로 귀결되어 버리는 일들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우리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을 쉽게 쓰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154쪽)
11. 자녀 교육
부모는 사실 자식에게 자화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에 그쳐야 합니다. 자식 스스로 클 수 있는 내면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자화의 토대를 제공하는 게 무엇일까요? 제일 중요한 것이 안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충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기능적인 것을 묻지 않고 즉, 성적이 어떤지를 묻지 않고 본질적인 것을 물어야 합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 ‘무얼 할 때 너는 행복하냐’ 묻고 자식의 말을 정성껏 들어주는 것이지요. 자식과 소유적 관계가 아니라 존재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12. 작은 승리와 큰 승리
상대와의 비교로 얻어진 승리는 다 작은 승리입니다. 비교할 때는 상대적으로 비교 조건이 달라집니다. 어떤 하나의 작은 기준을 가지고 비교해서 이긴 것을 자잘한 승리라고 하죠.
장자의 견해는 그런 자잘한 승리는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인데, 자잘한 승리가 벌어지는 그런 환경 자체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힙니다. 자잘한 승리를 도모하거나, 자잘한 승리에 취하면 사람이 자잘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큰 승리, 즉 대승을 해야 합니다. 자잘한 기준에서 판단되는 작은 승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위대해지는 큰 승리를 도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큰 승리는 성이만 할 수 있습니다. (184쪽)
13. 앎 = 발버둥과 몸부림
앎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이며, 그것은 의외로 몸부림이나 발버둥에 가깝습니다.
앎이라는 것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모르는 것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고 몸부림치는 일입니다. (185쪽)
14. 질문
질문이 뭘까요? 내 안에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세계 누구 하고도 공유되지 않고 자기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궁금증과 호기심은 지적 이해의 차원이 아닌, 이상하고 비밀스럽게 자기 전체가 솟아오르는 활동입니다. 이것은 기능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위대한 것이 다 질문의 결과라면, 그 위대한 것들은 다 인격에서 나온 것이란 말입니다. (206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