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내가 짓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붓다가 우리를 본다면, 아니 나를 본다면 “불행하기로 결심한 사람”처럼 보일 거 같다.
마음 속에 수많은 ‘상(相, 기준, 마음의 틀)’을 만들어 놓고, 만들어 놓은지도 모르면서 나와 사람들과 세계를 일분일초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기준과 마음의 틀이 나를 작디 작은 마음의 감옥에 갇히게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체 오늘도 내 옆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단점을 끈질기게 찾아내 판단한다.
나는 어떤 ‘상(相, 기준, 마음의 틀)’을 가지고 있는지 아주 솔직하게 들여다보고자 한다.
나를 속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이니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상‘은 ’잘 살고 있음’을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잘 살고 있음’의 기준은 보통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외부에서 온 것이고, 그래서 자주 변한다.
‘잘 살고 있음’의 기준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거여서 자주 이 기준에 의해 휩쓸린다.
살면서 여러 번 ‘잘살고 있지 못하다는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며 말수가 줄어들고 어깨가 움츠려드는 일을 겪었다.
오랜 시간 직장생활을 알차게 해 왔지만, 순식간에 그 자부심이 날아가는 경험을 한다. 누군가 나의 ‘잘 살고 있음’을 의심이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목에 핏발을 세우며 당신은 잘 살고 있냐고 덤빈다. 내가 지은 이 ’상相’이 나에게 가장 큰 ‘상相‘은 확실하다.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확하게 그 출처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내가 내 마음과 몸을 돌보지 못해서 스스로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 ‘잘 살고 있다 ‘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적이 많았다.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할 때, 내가 너무 싫어질 때는 더욱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목마르다.
세상의 가장 무서운 형벌은 ‘자기혐오’ 일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누군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를 싫어하는 일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나의 불행을 결정하는 ‘상相’ -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이 마음을 오랫동안 탐구해보고자 한다.
그 시작은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일’이라는 힌트를 얻고, 탐구를 진행해 본다.
나의 불행은 ‘내가 짓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