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Eui Feb 18. 2022

오랜 악몽에서 벗어났다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긴장하고 걱정하고 심장이 두근두근 거린다. 그래서 이유도 없이 불안해한다. 아주 오랫동안 내재된 불안감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마저 나를 괴롭혔다. 거의 매일 꿈을 꾸었고 나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긴 시간 잠을 자도 깊게 잔 적이 별로 없다. 자고 일어나서 꿈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얕게 자주 꾸었다. 매번 반복해서 꾸는 꿈이라면 스토리가 거기서 거기라 따로 기억을 되짚어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쫓기는 꿈을 꾸었다. 무언가에 쫓기는 꿈은 누구에게나 악몽일 것이다. 꿈에서 나는 난데없이 나타난 괴물을 발견하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무엇에 쫓기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일단 도망치고 달린다. 그러다 폐쇄적인 장소에 들어가서 이제는 안전하다 안심하려는 찰나 문이나 창을 부수고 괴물이 들어오려고 한다. 그럼 그걸 막기 위해 밤새 창을 걸어 잠그고 문을 잠그고 그러고도 안될 것 같으면 가구나 판자로 문을 막고 그 행동을 반복했다. 덕분에 쫓기는 꿈을 꾼 다음날은 아주 고된 몸으로 일어나야 했다.


 꿈을 자주 꾸는 만큼, 나는 곧잘 꿈을 자각했다. 가위에 눌려 무서운 꿈을 꾼대도 나는 꿈이라는 걸 인지하고 손가락을 움직여 깨곤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쫓기는 악몽에 관해서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자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으로 꾼 악몽은 좀 더 특별했던 것 같다. 그렇다. '마지막' 악몽. 나는 이제 더 이상 쫓기는 악몽을 꾸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몇 달 전, 나는 매번 꾸던 악몽에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고 그 이후로 십 년이 넘도록 반복됐던 악몽에서 해방되었다.




 세상에 괴물이 넘쳐났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이 괴물은, 기이하게 비틀린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그것들로부터 도망쳤다. 그 속에는 나도 있었다. 괴물의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군대는 거침없이 그들을 사격했다. 살기 위해 얼마나 뛰었는지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군대는 생존자들을 고등학교 안으로 대피시켰다. 가운데 정원을 둔 ㅁ자 형태의 5층 건물은 1층부터 차곡차곡 사람들로 차기 시작했다. 나는 군인의 지시에 따라 교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가장 높은 층을 향해 뛰어올라갔다. 만약에 건물이 뚫린다면, 그나마 꼭대기 층이 제일 안전하리라.


 5층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갔다. 이제는 안전하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는데 비명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창문으로 달려가 내려다보니 건물의 정원으로 그것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곧이어 총성이 울렸다. 군인들은 건물의 옥상과 각 교실의 창문에서 정원으로 몰려오는 그것들을 사정없이 쏘아대기 시작했다. 비명과 총성이 건물을 시끄럽게 울리는 동안, 내가 있는 교실에도 사람들이 몰려왔다. 기껏 해봐야 30명 정원인 교실은 순식간에 6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의 뒤로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군인 하나가 계단에서 그것들을 쏘아대며 뒤따라 들어왔다. 군인이 마지막까지 계단을 향해 그것들을 쏘아대는 동안 사람들은 교실의 앞, 뒤 철문을 잠갔다. 이윽고 교실에는 살아남은 이들의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


 그때 누군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 끝에는 어깨에 피를 흘리고 있는 군인이 있었다. 교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사람들은 복도의 괴물을 보듯 공포와 두려움의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사력을 다해 자신들을 구해준 사람에게 보내던 고마움의 시선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느낀 걸 그도 느낀 것 같았다. 손으로 더듬더듬 상처를 확인한 그는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했지만 곧이어 그의 눈빛에 절망과 분노가 스며들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교실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이들은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들의 고갯짓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굳게 닫힌 철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당신은 이 교실에서 나가야 한다.' 모두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그렇게 대신했다. 군인은 교실의 사람들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내가 너희를 구해준 대가가 이거야?' 그렇게 묻는 것만 같았다. 잠시 뒤, 군인은 굳게 다문 입을 뗐다.


"내가 갈 때 가더라도 혼자서는 억울해서 못 가.

이 중 하나는 데리고 간다."


 그의 말에 교실이 술렁거렸다. 어린아이와 함께 도망친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뒤로 숨겼고 사람들은 그와 눈이라도 마주칠까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아, 나는 그 순간 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가는 선택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그의 마지막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구보다 냉정하게 직시했다. '나는 이미 물렸고 괴물이 될지 모른다. 여기서 60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으니 교실을 나가야 한다. 하지만 목숨 걸고 사람들을 지킨 대가가 죽음이라 생각하니 억울하다.' 절망과 분노, 슬픔과 억울함, 두려움과 허무함이 그에게서 전해졌다.


 그는 자신과 눈을 피하는 사람들을 경멸스럽게 쳐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의 분노와 슬픔을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이대로 내가 선택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홀로 교실에 들어왔고 가족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혼자였다. 그런 삶이 의미가 있을까? 괴물이 넘치는 세상에 나 홀로 살아남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철저히 혼자가 되어 버티는 삶이, 그런 삶을 쟁취해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때였다.


"거기, 너. 너를 데리고 간다."


 군인의 선고에 바닥만 쳐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옆의 여자에게 꽂혔다. 여자는 너무 놀라 반문도 하지 못한 채 옆에 선 나와 군인과 사람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여자의 얼굴에 공포와 억울함이 새겨졌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군인의 결정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었다. 선고를 내린 이도 선고를 당한 이도, 여기 있는 모두가 억울할 뿐이었다. 지금 여기서 억울할 것이 없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무서웠지만 내가 하는 결정이 옳다는 확신이 내게 해방감을 주었다. 나는 그대로 손을 들고 군인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군인은 잠시 당황한 것 같았지만 별 말없이 내가 서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왔고 창틀에 올라섰다. 그는 창 밖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관조하듯 내려봤다. 아까의 분노에 찬 표정도, 그렇다고 억울하거나 슬픔에 찬 표정도 아니었다. 단지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 창틀에 올라가 그의 옆에 섰다. 정원에는 여전히 그것들이 넘쳐났고 군인들의 총성도 멈추지 않은 채였다.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아마 바로 죽지는 못할 테다. 그렇게 어설프게 살아남은 채로 그것들에게 먹히겠지.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살아있는 것이 더 지옥일지 모를 이후의 삶에 미련을 갖지 않으려고 삶과 죽음의 가치를 무게 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진심으로 그를, 그리고 이 선택을 이해하는 건 나다. 그때, 옆에 선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도 많은 생각이 있는 듯했지만 내가 다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단지 내가 여기 그와 함께 서있다는 사실만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길 바랐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나도 혼자가 아니다. 그도 나도 우리 삶의 마지막을 그렇게 기억할 테다. 그 사실은 나에게도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준비가 됐다. 정원의 혼돈을 내려다보며 마치 깊은 바다에 뛰어드는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발을 뗐다.


 그 순간, 나는 뒤로 당겨져 교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순간적으로 창틀에 선 그를 올려다봤을 때, 하늘을 등지고 선 그가 내게 말했다.


"이건 아니야."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날의 꿈은 여느 때처럼 자도 잔 것 같지 않고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뻐근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주 피곤한 꿈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꿈에서 깨어난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득 찬 것 같았다. 만족감? 아니, 그렇다기에는 공허함이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몇 번을 더 꿈을 떠올려봤다. 쓸데없이 선명했다. 무엇보다 꿈에서 느낀 사람들의 시선과 감정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그의 마지막 말은 며칠간 귓가에 생생했다. 만족감과 공허함 그 어딘가에서, 또 슬픔과 행복감 그 어딘가에서 나는 악몽에서 벗어났다.


 몇 달 전, 이 꿈을 이후로 나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도망치는 꿈을 꾼 적이 없다. 일주일에 몇 번은 꼭 꾸던 꿈인데 나는 이제 그 무엇에도 쫓기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개꿈이라기에는 분명히 그것보다는 더한 의미가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도망치는 꿈에서 도망쳐보지 않은 적이 없다. 매번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단지 그날은,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꿈이었대도 창틀에 서서 느꼈던 두려움과 해방감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날 꿈에서 느꼈던 모든 감정이 현실의 나와 동기화된 것 같았다. 나를 항상 조급하고 긴장하게 만들었던 무언가가 툭 끊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그 꿈이 악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 준 악몽은 악몽일까. 꿈은 무의식의 세계라는데 간 밤에 내 안의 나와 타협한 것만 같다. 이제 도망칠 필요 없다고,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그동안 괴로운 상황을 회피했다. 할 수 있는 한 모른척하려고 노력했다. 도망쳤다. 그런데 그런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 다음이 아니면 다다음, 지금 도망치면 결국 더한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도망쳐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국 닥칠 일은 겪어야만 지나갔고 받아들여야만 끝이 났다.


 덕분에 요 근래의 나는 생각을 비우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닥치는 대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 걱정도 두려움도 옅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 것, 낡은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