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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Eui Nov 18. 2024

차폐된 세상의 적막과 고요

가을이 와서 무감각해진 감성이 두근거려요

며칠 사이 봄 같던 이상 가을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 씁쓸한 공기를 몰고 왔다. 찬 공기는 대기에 묵직이 내려앉으며 마음도 함께 가라앉힌다.


감정이 다사로워 세상을 차분히 살지 못한 채 방방 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제법 서른 해를 견딘 생명이 되어 무감각한 일상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추위에 입김보다 크게 욕설을 내뱉으며 계절과 맞서 싸우던 아이는 이제 추위에 뼈가 시리고 무릎이 아파 동네 대형 정형외과를 다니는 어설픈 어른, 서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들과는 다른 나를 바라면서, 남들과는 똑같아지고 싶은 나를 마주하면서 모순된 바람을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추운 자연의 이치를 따라 흘려보낸다. 


그렇게 낙엽이 지고 동네 하천 가에 장미가 핀 이상한 가을이 되었다.


이때쯤, 문득 여름 내 달고 살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두고 거품이 잔뜩 얹어지고 휘핑크림으로 사치를 더한 근사한 헤이즐넛 라떼를 애정하게 된다. 한 잔에 7,000원은 거뜬할 레시피로 텀블러 가득 욕심을 부려 마음을 덥혀본다.


거품의 공기가 '뽁뽁' 소리를 내며 터지고 나는 차가우면 먹기 싫어지는 라떼를 지키기 위해 텀블러 뚜껑을 꽉 닫는다. 이제 작은 나의 방에는 라떼가 터트리는 '뽁뽁' 소리마저 완전히 차폐되어 세상의 적막과 고요를 맘껏 누려본다. 


낙엽이 다 떨어져 버린 이 가을의 적막함이 두꺼운 겨울 이불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어른의 감성을 이해할 줄 아는 제법 근사하고 이상한 늙은 아이가 된 것 같다.


마지막 서른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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