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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눈이 내린다


하루 종일,


얼마 만인가

당신과 단둘이 있는 게


누워 계시는 당신을 일으켜

밥 한 숟갈 떠미며

눈 내리는 것 좀 보라 했더니


안 보이신단다


저렇게나 많이 쏟아붓는데


나 좀 보라

저렇게도 휘몰아치는데,


당신도 아는 걸까


수십 년 전 당신을 따라온

꽃다운 처녀가 오늘 수술을 받는지,


갈 수 없는 뚱아리 대신

하루 종일 소원만 어주나 보다


옛날에 엄마가

절에서 불공 마치는 날 눈이 내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겁 많은 우리 엄마

수술 잘 받으라고

함박눈이 내리나 보다


누워 계신 당신은

뭘 보셨는지

'이래서 어떻게 사냐'라고 하신다


어린 시절 꿈속을 다녀오셨나 보다


아득한 꿈길로 다시 돌아가시기 위해

준비하시나 보다


자꾸만 두 눈에

눈이 내려

하염없이 녹아내린다


죄인,


왜 화냈던가

왜 싸웠던가


속절없는

눈은

멈출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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