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집"이라는 글자로 검색을 해보면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되어있다.
나는 집을 물리적인 질감으로서의 건축물과 생활적인 측면의 가정(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라는 것으로 구분해 보고 싶다.
나에게 온전한 가정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하자마자 대출을 받아서 구입한 빌라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전에 수없이 이사를 다녔던 내 기억 속의 집들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왠지 몸과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집주인이 비워 달라고 하면 이사 가야 하는 그런 부담을 지니고 살아야 했던 집들은 온전한 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내 스스로가 이사 가지만 않는다면 누군가 함부로 집을 비워달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온전한 나의 집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긴 그런 건물이라도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추위에 밖에서 떨어 본 사람은 추위와 더위,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집이라면 전. 월세라도 고마워했을 것이다.
집 하면 가장 먼저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아이가 생각난다.
육성회비 오천 원이 없어서 동구 밖에서 비를 맞고 오한에 덜덜 떨던,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학교에 가지도 못한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아마 육성회비도 못 내면서 내 가정에서 내방을 꾸미고 산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꿈이란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려 더 서글프게 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왜 사람들은 한 시간의 쪽잠을 자더라도 자기 가정으로 돌아가서 잠을 자고 나오려고 하는 걸까?
과거에 술을 많이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서도 가까운 여관 등에서 잠을 자지 않고 잠깐이라도 가정에 들어가서 눈을 붙이고 출근하려던 것은 단순히 외박을 피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오바이트를 하면서도 택시를 타고 가정으로 향하는 귀소 본능에는 그 건물 안에는 자신을 안전하게 챙겨 줄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서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독감에 걸려 회사도 결근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침대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만 있던 아린 기억들,
회사에서 승진에 누락되어 길거리를 방황하며 돌아다니다가 늦게 귀가하여 잠자는 아기의 모습을 보며 위로받던 따스한 기억들,
가정에는 그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그리움을 저장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픈 사람이 건강해지고 싸운 사람들이 화해하고 집 나간 사람이 돌아오고,
어르신들은 아무리 부부 싸움을 해도 집에는 꼭 들어가라는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부부 싸움을 해도 가정을 지키라는 말씀일 것이다.
집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가정을 다시 이루려면 단기간에 쉽게 지을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망가진 가정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 그전처럼 똑같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보장도 없다.
하루 종일 세상과 부대끼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사람들이 에너지를 충전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얻고 아팠던 사람이 다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그런 가정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