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할 수 있는 일,해야 하는 일
어렴풋이 기억나는 유년시절부터 나는 그림을 그렸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예쁜 스케치북과 색연필 등은 구경도 못 해봤을 때인지라, 나는 늘 커다란 달력의 뒷면을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렸었다.
지금 생각하면 태생부터 그림 그리는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환경의 영향도 한몫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릴적 아버지는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하셨었다. 정확하게는 목재로 된 가구에 십장생 등의 조각을 하는 일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집엔 늘 두꺼운 도감책이 있었고 거기엔 사슴,거북이,학 등 여러 동물들이 다양한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그게 무언지도 모를 나이에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많은 도감을 보는걸 좋아했고, 난 그것들을 곧 잘 따라 그렸던 것 같다.
그렇게 기억이 닿는 어린시절부터 쭉 그림을 그려온 나는, 초등학교 입학후부터 고교시절까지 각종 미술대회에서 빈번히 상을 타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을 '업'으로 하는것엔 딱히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거기엔 어린 시절의 작은 기억이 한 몫을 했던것 같다.
초등학생때인가, 교내 미술대회에서 상장을 받고 집으로 와 아버지께 신이 나서 자랑을 했더랬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반응은 어딘가 시큰둥하게 느껴졌다.
'어, 잘했다.'
지나치게 짧고 조금은 건조한 어투의 대답.
내성적이었던 나는 서운함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아버진 내가 그림 그리는걸 별로 안 좋아하시나보다.'정도로만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20대 중반이 되던 즈음, 아버지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뵙게 된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내게 위로를 전하시며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함께 건내주셨다.
'너희 아버지가 어릴때 너 그림 그려서 상 받아 올 때면 그렇게 술자리에서 자랑을 하더라..'
오랜기간 몰랐던 아버지의 진심을 그제서야 마주하게 된 나는, 왜인지 모를 안도감과 슬픔이 동시에 복받쳤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예체능계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걸 힘껏 지원해줄 수 없었을 당신의 형편때문에 아버진 기쁨을 삼켜낼 수 밖에 없었으리라.
5살 딸 아이를 키우는 지금이 되니 아버지의 무심함 뒤로 숨겼을 서글픔이 얼마나 컸을지가 조금은 헤아려진다.
어쨌든 칭찬과 인정에 대한 결핍때문이었을까,
어려서부터 나름 두각을 나타냈던 분야임에도 미술은 내 맘 속에 '미래'를 제시해주지 못했다.
대신 엉뚱한 녀석이 마음에 조금씩 또아리를 틀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음악'이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