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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summer Nov 19. 2023

어느 날의 일기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새롭게 뭔가를 시작해야 하는데 겁이 난다. 지난 경험이 발목을 잡고, 시행착오가 다시 올 것 같고, 매일 먹는 나이가 자신 없어서. 


사업을 시작하고 쉼없이 달려왔다. 사업처럼 어려운 게 있을까 생각하며 매일 공부하고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늘 한켠에 남의 꿈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숨이 막혔고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다. 그곳이 어디라도 여기만 아니면 행복할 것 같았다. 

처음부터 내 사업이 아니어서 그랬나보다. 나를 가슴 뛰게 했던 일을 잠시 뒤로 미루고 같이 사업하던 사람의 꿈을 쫒아 사업을 키웠다. 내 회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일했고, 2인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가슴 뛰게 했던 사업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때를 기다렸다. 1년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11년이 걸렸다. 그리고 2023년 11주년이 되었다. 


2020년이 막 시작됐을 때 결심했다. 8년 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내 사업을 하기로. 

그리고 실행했다. 

나를 지켜주던 울타리를 걷어 내고 오롯이 혼자 벌판에 첫발을 내딛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너무 행복했다. 이렇게 시간이 여유로운 적이 있었나. 마음대로 출퇴근하고 쫒기지 않고. 

자유로웠다.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온라인 쇼핑을 할 수도 있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는 이 여유가 행복했다. 

어떤 날은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지나갔다. 어떤 날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밤이 왔다. 

오직 강아지만이 내 곁에 있었다. 천사처럼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없어도 괜찮았다. 

마침내 내 사업을 내 힘으로 할 수 있게 돼서 설레고 흥분되었다. 이상한 자신감도 있었다. 사주를 보니 사업운이 열렸다고 했다. 그럴 것 같았다. 2020년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나는 잘 될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석달.... 시간은 빠르게 갔고, 나는 온라인 시장에서 헤매고 있었다. 전쟁터 같은 그곳을 공부하는데만 수일이 걸렸다. 온라인 교육 서비스 마케터로 일한 지난 8년이 무색할 정도로 내가 시작하려고 하는 유통 사업은 전쟁터 그 자체였다.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다양한 이유들이 걸림돌이 되었고, 불가능한 부분도 맞딱뜨렸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서야 좋은 파트너를 만나 브랜드를 만들고, 쇼핑몰을 오픈해 소위 3주만에 대박을 쳤다. 추석 시즌의 덕도 있었으나 그간의 경험으로 순식간에 만들 수 있었다. 

A부터 Z까지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 새로운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들어 가고, 제품을 브랜드 안에 녹였다. 브랜드 확장까지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과거 10년 동안 유수의 잡지사에서 에디터, 편집장까지 했던 경험과 지난 10년 동안 마케팅을 총괄하며 사업을 운영한 경험으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위기는 금새 또 찾아왔다. 좋은 파트너는 또다른 파트너와 삐걱대어 사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3개월만에 사업을 접고 나는 또 0부터 시작해야 하는 시간에 놓였다. 

이쯤에 우울증이 찾아왔다. 좋게 말하면 감성이 풍부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저 예민하고 불안하고 걱정하는 성격이었다. 우울했고 무기력했다. 뭘해야 할지 몰랐다. 다시 온라인쇼핑몰을 해 보려 아이템을 찾았지만 제조사에서 물건을 떼 와 재판매하는 기존의 방식은 비전이 보이질 않았다. 장사를 잘하는 일에도 소질이 없는 듯 했다. 


40대였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가장 두려운 나이. 나는 그랬다. 

자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뭘 해야 할지 하루하루 생각만 하다 시간이 갔다. 유튜브의 동기부여 영상들을 하루종일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 어떻게 성공했는지,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은 어떤지 듣다 보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40대가 되었는데 뭘하고 있었던 걸까. 남들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집도 사고, 젊은 나이에 돈도 많이 버는 것 같았다. 그런 류의 영상들만 나의 알고리즘을 가득 채웠다. 점점 온 몸의 기력이 발끝을 통해 바닥으로 빠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남과 비교하는 건 불행에 빠지는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고도 있다. 무기력은 계속 그렇게 찾아왔다. 그래도 꾸역꾸역 사무실을 나갔다. 나가면 일이 있었다. 아니 습관처럼 앉아서 여러 업무를 했다. 매출 없는, 무언의 외침만을 사무실에 가득 채우고 생각의 늪에서 유영하다 집에 돌아왔다. 아무도 없지만, 익숙하고 가장 편안한 곳 집으로. 





By bing

어느 날 막 써내려간 글이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쏟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나봐요. 

지금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일기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그때는 중요했지만 지금은 아닐 수도.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여전히 혼자 수영하는 기분이지만, 또 하루가 살아집니다. 

평온은 아주 얇은 필름처럼 쌓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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