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개와 살고 싶다면...
내 인생에서 개를 빼면 아마 큰 구멍이 생길 것 같다.
그만큼 개가 없던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쭉 늘 개가 있었다. 할머니가 키우던 개, 엄마가 키우던 개 그리고 지금은 내가 키우는 개.
엄마는 20년 넘게 고양이 집사이다. 엄마 인생에서도 고양이와 개를 빼 놓을 수 없는데, 그 영향을 내가 고스란히 받았다.
친척 중에는 나와 4살차이 밖에 나지 않는 삼촌이 있다. 삼촌은 개를 너무 좋아해서 자식 대신 여러 마리의 개와 살며, 아예 개사료 회사에서 일한다. 삼촌 덕분에 나는 국내 반려동물 산업을 이끌고 있는 CEO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내가 개를 키우기 시작한 무렵, 반려동물 산업이 커지면서 그쪽 일을 할까 조사도 많이 했었다. 브랜드를 만든 경험도 있다.
그래서 말이다.
반 개 전문가로서 1인 가구가 개를 키우겠다는 사람에게 몇 가지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지금 개를 키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꼭 내 얘기를 참고했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없이 덜컥 입양을 하는 실수를 하지 말길 바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2022년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4.5%인 750만2천 가구로, 29세 이하 19.2%, 70세 이상 18.6%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 사회 가구 유형 중 1인가구가 이제 가장 높아졌고, 10명 중 서너명은 혼자 산다는 얘기다.
결혼 시기도 많이 늦어졌고, 비혼 가구도 급증하고 있다. 또 이혼률이 높아지고, 수명이 길어진 것도 1인 가구가 증가한 이유로 꼽힌다.
지난 10년 간 개를 키우면서 반려동물 시장을 누구보다 유심히 지켜봤는데, 반려동물 산업이 급격하게 커진 것도 1인 가구의 증가와 맞물린다.
10년 전 2013년에는 시장 규모가 1조9천억 수준이었다. 그때는 2027년에 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그러나 2020년 기준 반려동물 산업 규모는 약 5조8천억 원이었고, 2022년에는 8조 원, 2027년에는 15조 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한다.
KB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552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5.7%, 인구수로 따지면 1262만 명에 달한다. 열 집 중 세집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얘긴데, 이 중 1인가구의 비율은 정확히 조사한 자료는 없으나, 1인가구와 이른바 펫코노미 산업이 함께 증가하고 있는 걸 보면 꽤 높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나는 개와 함께 출퇴근을 같이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개는 회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매니저'라는 직함도 얻었다.
사무실에 개가 있으니 늘 분위기가 좋다.
그런 모습에 "나도 개나 키울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고,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질문을 늘 받는다.
개가 주는 행복과 위로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를 부지런하게 하고, 웃게 하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는 '위대한 존재',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순수한 영혼'이 바로 개가 아닐까.
개를 키우면 좋은 점은 100가지도 나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개를 키우겠다는 사람들에게 늘 "키우지 마라"고 말한다.
개를 키운다는 건 크지 않는 갓난아기를 15년 이상 돌봐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를 키운다고 마음 먹었다면 반드시 깊게 생각해 봐야 할 점이다.
많은 사람이 강아지는 사료만 주면 스스로 잘 크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개는 인간이 재창조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평생 상호작용하며 살아야 한다.
무관심은 학대고, 방치는 범죄다.
나는 너무 바쁘지 않은가?
일도 해야 하고, 자기계발도 해야 하고, 친구도 만나야 하고, 운동도 가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여행도 가야 한다. 갓난아기를 이 시간동안 혼자 둬야 하는데, 개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다.
이 모든 걸 함께 할 수 있다면 키워도 좋다!
물론 개에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보호자와 오래 붙어 있으면 분리불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개를 혼자 두는 시간이 8시간 이상 매일 반복될 예정이라면 안 키우는 게 좋다.
나의 경우 운 좋게 출퇴근을 같이 하고, 하루 두번 산책은 기본이다. 눈이 오나 폭우가 쏟아져도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또 여행을 포기한 적이 많다. 혹은 같이 갈 수 있는 여행을 간다.
하지만 강아지가 노년기에 들어서면 이마저도 잘 못하므로 여행 좋아하는 사람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요즘은 애견호텔에 맡기거나 돌봄 서비스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런 곳을 좋아하는 개가 있는 반면, 보호자와 떨어져 낯선 곳에 몇날 며칠을 있어야 한다면 십중팔구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훈련으로 적응시키면 되지 않나요?"
참고로 나는 못했다. 하루 맡겼다가 개거품을 물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덜덜 떨기만 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죄책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가족에게 잠깐 맡기면 되죠."
그것도 한 두번이다. 애기랑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개의 마음을 읽는 법>(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이라는 책에 보면 강아지 입장에서 우리와 보내는 처음 몇 주는 신생아가 경험하는 '경이롭고 소란스러운 혼란'(1980년, 윌리엄 제임스, 미국의 철학자)의 상태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내가 느끼기에는 몇 주가 아니라 평생 그 상태인 것 같다. 잘 때 빼고는.
갓생 살고 있는 1인가구 직장인이라면 키우지 않는 걸 추천한다.
내 인생 살기도 바쁘고,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바쁜데 말이다.
개를 키운다는 건 나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
최근에는 구청이나 주민센터에도 가끔 반려동물 양육자를 위한 교육이 열린다. 또 대학의 전공이나 유료 아카데미도 많이 생긴 듯 하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다. 4-5년 전만 해도 반려동물 교육시장은 전무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갓난아기를 키우려면 육아에 대해 공부해야 하듯이 개육아도 마찬가지다.
생애주기별로 배워야 할 것도 다르다. 개도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노년기가 있다. 또 입양 전에 알아야 할 것들, 펫로스 이후 즉 개가 세상을 떠난 뒤의 준비도 해야 한다.
모두 알려고 하고, 케어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에 대충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개를 키우면서 이 부분이 절실히 필요했다.
개를 키우면서 알아갔지만, 키우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도 많다.
입양 전에는 아기를 낳기 전 육아 공부를 하는 것처럼 많이 알아보고, 키우면서는 시간을 들여 배우는 적극적인 양육자여야 한다.
예를 들면 개는 늑대의 후손이라는 생각으로 무리, 복종, 명령, 서열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사회화와 교감으로 진작 바꼈어야 한다. 흔히 늑대는 서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연구는 늑대를 포획해 철창 안에 갇힌 늑대를 관찰했으므로 그 안에서 늑대는 강한 순서대로 서열을 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자연 상태의 늑대는 우리 전통 농촌의 모습처럼 서로 돕는 가족의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복종시키고, 명령하여 말 잘 듣게 하고, 나는 너보다 위라는 서열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교감을 하고, 사회화가 잘 되도록 함께 지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개'이다.
감정언어와 보디랭귀지도 이해해야 할 게 많다. 개에게는 짜증이나 화나는 감정이 없다. 하지만 두려움, 불안, 외로움은 느낀다.
<개의 마음을 읽는 법>의 저자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라는 인지과학 박사이자 개 행동 분석 전문가로 꽤 유명하다. 이 책에서 그녀는 개의 세상은 냄새로 기억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정보지만, 개는 세상을 냄새로 본다. 들숨은 물론 날숨으로도 냄새를 맡으며,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들이 쾌적한 상태를 줄 수도 있다.
보호자가 우리 개는 냄새로 세상을 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크다. 산책 중에 다른 개의 배설물이나 엉덩이에 코를 갖다대면 목줄을 잡아 당기는 보호자들을 많이 봤다. '냄새 산책'은 개에게 행복을 주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는 유튜브에도 좋은 정보들이 많지만, 사람이 제각각 모두 다르듯이 개도 마찬가지다.
성격, 취향, 유전적 특성, 환경에 따른 변화 등 '나의 개'에 대해 관찰하고 살펴 알아가야 한다. 다른 집 개와 우리 개는 많이 다르다. 무조건 유튜브에서 어떤 훈련사의 말만 믿고 개 훈련 시킨다고 하드 트레이닝을 해서는 안된다. 소심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공부는 '먹는 것'에 대한 거다.
사료 회사에서 충분한 연구로 개의 주식을 책임지고 있지만, 먹는 즐거움이 인간에게도 크듯이 개도 그렇다. 사료와 간식을 적절히, 건강한 식이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어렵다.
반려동물 영양학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초보 수준이고, 인터넷 검색으로 우리 강아지에게 뭐가 좋은지 알려면 광고가 먼저 뜬다. 동물병원 수의사들도 영양학에 대해 지식이 얕은 경우를 많이 봤다.
또 각종 영양제도 너무 많다. 최근 동물병원이 치과, 심장 전문 등으로 세분화되는 것처럼 반려동물 영양에 대해서만 진료하거나 상담해 주는 곳도 생겼다. 이 흐름은 가격도 비싸고, 소비자로서 부담도 크고, 혼란스럽다.
우리 개의 경우 식전 에피타이저로 삶은 브로콜리와 당근, 단호박, 파프리카 혹은 미니양배추(채소는 모두 유기농)를 먹고, 저지방식과 단백질 적정량 식사를 한다. 피검사할 때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고, 고지혈증 판정을 받아 몇 년전부터 해오는 케어식이다.
이 과정에서 고지혈증과 지방종 관련 많은 자료를 찾아봤고,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우리 개가 아무거나 먹어도 문제없이 건강하다면 좋겠지만, 복불복이다.
혹시라도 유전병이 있는 개를 입양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시중에 나온 제품을 나는 모두 믿을 수 없다. 최소한 어떤 성분인지, 믿을 만한 기업인지 알아는 봐야 한다. 사람처럼 개도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수고들이 15년 이상 계속 되는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었듯이 개의 수명도 최근 많이 늘었다!)
입양하기 전에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개를 대하는 태도가 준비되었는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매너에 대해 아는지, 생명에 대한 소중한 마음(이건 기본이겠지만), 부지런함, 책임감과 배려 등에서 자신있는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은 이 작은 생명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훈련은 혼내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다. 개의 목을 누르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개에 관련한 책 몇 권을 더 추천하자면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패트리샤 맥코넬), <펫닥터스>(펫닥터스 제작팀), <이토록 굉장한 세계>(에드 용)가 있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진데는 보호자가 돈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그만큼 제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되었다. 나는 여러 펫박람회나 전시회를 수도 없이 다녔는데, 마치 육아시장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보호자들은 할인을 하는 이런 전시회에서 미친듯이 제품을 쓸어 담는데, 그들에게 가격은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반려동물 산업 전반에 거품이 많이 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 하지만, 개를 키우는 일은 정말 돈이 많이 든다. 특히 동물병원비는 납득이 안 갈 정도로 많이 나온다. (이 부분은 정말 개선이 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리 개를 예로 들면, 입양하자마자 병원비로만 12만원을 썼다. 귀에 진드기가 꽉 차 있었고, 예방접종 몇개를 해야 했다. 예방접종은 5차까지 이어졌고, 갈 때마다 병원비는 당연히 들었다. 이건 완전 새발의 피였다.
1살이 되기 전 중성화 수술을 했는데, 이것도 약한 정도다. 겨우 몇 십만원 썼으니깐.
2~3살 무렵 슬개골 탈구 수술로 양쪽 다리 200만원이 들었고(각종 검사비, 입원비, 통원치료는 별도), 방심한 틈에 뭐라도 잘못 먹으면 4~50만원은 그냥 깨진다. 검사비로만.
유전적으로 질병을 갖고 있으면 정기적으로 병원비가 눈물 날 수준으로 깨진다. 지방종이 생기는 특이한 체질이라 매달 피검사와 한달치 약을 타는데만 20만원이 넘게 든다. 지방종의 원인을 알려고 CT를 찍었는데, CT 비용만 100만원이다.(벌써 2번이나 찍었다) 그런데 결국 원인을 알지 못했고, 지방종이 생긴 위치만 선명하게 봤을 뿐이다.
회사 근처에 치과 전문 병원이 생겨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280만원을 냈다. 엄청 아팠을 거라며 이를 여러 개 뽑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의심스러운 이 치과 생각을 하면 화가 난다. 근데 결국 내 탓이라고 자책한다.
병원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광견병 접종은 매년 해야 하고, 심장사상충 약은 매달 사야 한다.(모기가 없는 계절은 그냥 건너 뛴다.)
어느 날은 눈이 혼탁해 보여 병원 간 김에 물어봤다가 안과 검진에만 수십만 원을 쓰고 백내장 전 단계인 '핵경화'라는 것을 알게 됐다. CT 찍은 날이니 이날만 200만 원 가까이를 썼다. 지방종과 핵경화 모두 지켜보자는 의사의 말을 듣기 위해 그날만 200만 원 가까이를 쓴 것이다.
앞으로도 병원비는 계속 들어갈 것이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개도 사람과 같이 노화가 오니까.
먹는 비용을 한번 살펴볼까.
우리 개의 경우 식비만 한달에 2~30만원이 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각종 유기농 채소와 비싼 간식 덕분이다. 케어식 덕분에 고지혈증 관련 수치는 많이 좋아졌는데, 지방종은 여전히 생기고 있다. 입양할 때는 당연히 이러한 유전적 특징이나 체질을 알 수가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복불복이다.
그외 의류비, 생활용품(치약, 칫솔, 샴푸 등), 하네스(가슴줄), 장난감, 카시트 등은 보호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비싼 것을 살 것이냐, 저렴한 걸 살 것이냐.
또 미용비다.
이중모를 가진 우리 개는 털이 조금만 길어도 더워 한다. 또 나의 비염도 심해진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미용을 해야 하고, 한달에 9-10만 원 정도가 들어 간다. 이 비용을 아껴 보려 바리깡과 가위 세트를 30만 원 정도 들여 구입했는데, 입질을 심하게 하고 성격이 난폭해졌다. 나는 손과 팔에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을 겪었다. 개는 누더기견으로 몇 달을 보내다 다시 미용실을 다니게 되었다.
한 해에 유기견이 약 10만 마리 정도 발생한다. (2022년 113,440마리 - 이 중 개는 80,393마리(70.9%), 고양이 31,525마리(27.8%)로 전년 대비 감소한 편)
나는 납득이 안되는 동물병원비를 비롯해 돈이 많이 드는 이유도 동물을 버리는 일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보호자의 책임감 없는 양심과 유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10만 마리가 버려진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돈 없으면 개도 못 키우는 세상이니 꼭 기억하길 바란다.
https://youtu.be/j-wNRggUd_g?si=EHL4GK9I6LIOm3Rb
@bysummer
그럼에도 개는 신이 주신 선물이야
이 모든 걸 해내고도 충분하지
건투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