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엄마는 늘 나의 딸이 보고 싶단다.
장맛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10년 만에 고등학교 친구 k가 찾아왔다.
학교 다닐 때도 살은 통통했어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었다. 여전히 그녀는 그 미모 그대로 아름다웠다. 컬이 굵은 웨이브를 살짝 넣은 단발은 우아하기까지 하였다.
명절 때면 한 번씩 카톡 안부가 오기도 하였는데, 만난 지 너무 오래된 친구와의 만남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년의 세월 동안 그녀의 미소에 주름이 지기도 하였다.
나는 여름인데도 비 때문인지 따뜻하게 몸을 감싸 줄 따뜻한 유자차를 시켰는데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우리는 주문을 하고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리기도 하였다. 뭐부터 물어봐야 하나 마음속이 어지러웠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전교 1,2,3등을 하던 모범생파와 입학식 날부터 스프레이를 이용하여 앞머리를 둥글게 말아 세운 날라리파로 나뉜다. 나는 별 거부감 없이 두 부류에 흡수되었다.
k는 등교 첫날 번호를 정하기 위해 줄을 세웠는데 나보다 키가 작은데도 내 뒤에 섰다. 그래서 나는 37번 k는 38번이었다. 번호순으로 자리를 정하다 보니 짝꿍으로 만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k는 나의 옷차림을 보고서 아마도 같은 부류의 친구라고 생각해서 내 뒤에 섰다고 하였다. 나는 상고를 다녔는데 그때는 비평준화로 멀리서도 지원하여 입학이 가능하였다. 대부분은 중학교를 거치고 바로 올라온 친구들이 많아서 나는 조금도 어색함이 없었던데, k는 혼자 성적에 맞춰 학교에 와서 친구가 없었다. 사실 그날 나는 언니의 점퍼를 교복 위에 입었는데 항공점퍼 비슷한 루주 핏의 싸구려 명동의류 점퍼가 그때 아마 유행하던 아이템이었던 것 같다. 본의 아니게 나는 k의 눈에 잘 놀 것 같은 아이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시대 또 다른 모범생 무리의 y가 전화가 왔다. 현재 고3인 딸은 국가대표급 유도선수라고 하였다. 중2 때부터 유도 유망주로 대회에 나가면 모든 상을 흡쓸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운동을 하다 보니 잦은 부상으로 수술도 여러 번 받고 본인 스스로가 유도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하였다. 딸은 원래 가수가 꿈이어서 스스로 오디션을 보러 다닐 만큼 실력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엄마의 입장에서 유도선수로의 유망주인 딸을 포기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는날 인터넷을 뒤지다가 대학교수인 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리고 딸의 상담을 의뢰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았다. 사실은 엄마가 언니랑 남동생을 신경 쓰느라 나에 대한 신경을 미쳐 쓰지 못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엄마에 눈에 띄기 위해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잘하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삼 남매 중에는 등수가 높았던 거 같다.
엄마의 옷장을 열어본다.
자수가 들어간 커다란 네크라인 카라의 잔꽃무늬가 들어간 원피가 걸려있다.
엄마도 여성스러운 예쁜 원피스를 좋아했었구나~~
손이 부러 터지도록 일을 하셨어도 엄마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여성이고 싶었었구나~~
차마 입어보지 못하고 햇살이 드는 창에 원피스를 비추어 본다.
한동안 말이 없던 k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둘이 있었는데 갑자기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20억의 빛을 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보지 못한 k는 미래가 너무 무서웠다고 하였다. 매일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서 가정을 탈출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 술집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그 뒤로 집을 나왔다고 하였다.
이혼이 확정되고 정신을 차렸을 때 k는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보고 싶은데 이혼의 귀책사유로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학교 앞에 가서 기다려도 아이들은 엄마를 보면 도망을 갔다고 했다. 이제 고3이 된 아이에게 용기를 내서 연락을 하였다고 하였다.
"누구세요? 당신이 내 엄마예요? 내 엄마는 이미 죽었어요"
나는 k에게 과거에 대한 집착과 미안함을 버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지 말고 아이도 지나온 세월 동안에 묵은 감정이 있을 텐데 하나씩 천천히 풀어야지 갑자기 자기감정에 달려가지 말라고 했다.
그녀는 하염없이 소리도 없는 눈물을 흘렸다. 비는 점점 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y의 딸을 만났다. 아이는 엄마를 닮아 동글동글 선한 인상에 키가 170이나 되는 친구였다. 멀리서 봐도 운동하는 친구로 보였다. 자신은 음악을 하고 싶어서 대학 진학으로 하고 싶다고 하였다. 재능이 많은 친구인데 아마도 엄마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재능을 살려서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그러고 나서도 음악이 계속하고 싶으면 그때 부전공으로 선택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지금 바로 운동을 관두고 음악 쪽으로 대학을 진학한다 해도 입시 준비시간이 부족하여 원하는 대학에는 들어가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금 강호동이나 서장훈이 과거에는 운동선수였는데 지금은 방송가를 휩쓰는 연예인이 되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들은 그 분야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왔기 때문에 연예계 진입장벽이 낮을 수 있어서 그런 거라고 싶게 설명해 주었다.
y의 입가에 엷게 미소가 번졌다.
k에게 아이를 위하여 일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아이와 같이 못했던 지난 추억에 대해서 엄마가 딸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추슬러지면 그때 아이를 만나라고 하였다.
"엄마가 그때는 정신이 많이 아파서 그럴 수밖에 없었어. 엄마는 엄마 품속에 안겨 태어난 너희들을 매일 생각하면서 기도하였단다."
아이도 언젠가는 커서 엄마가 될 거니깐, 그때 엄마가 필요할 테니깐.
비온뒤의 개운함처럼 k의 울컥함도 개운했으면 좋겠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을 찌푸리게 하지만 잔꽃무늬의 원피스는 속이 환히 비치었다.
엄마도 평생을 아름다운 여자로 살고 싶었었구나. 손이 무디도록 일만 하다가 아이들 밥해주고 뒤치다꺼리하는 그런 삶은 꿈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소녀시절 엄마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