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이야기. 혼자여도 괜찮아. 관계 정리하기.
삶의 잠시 멈춤으로 생각이 많았다.
불현듯 유진에게 카톡이 왔다. 무심한듯한 안부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있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안정감이 있었다. 2년만의 연락이라 그녀가 문득 보고 싶었다.
집으로의 초대는 어쩌면 내 맘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집밥을 해주고 싶은 맘도 있긴 했는데 마음속 깊이에는 멈춤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사역으로 그녀를 마중나갔다. 설례임도 있었고 또 내맘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출구에서 밝게 웃는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관계라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도 있지만 추억이 있는 관계는 내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서 깨기가 힘들다.
일년에 한두번 나의 생사를 확인하는 친구가 있다. 잊고 있다가 가끔씩은 그런 친구가 고마울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불안함이 엄습하는 멈춤의 순간에는 그 친구가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려고 연락을 했나 하는 잠시잠깐의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의 일상은 보여지는 부분이 과대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시간을 지날수록 사회적인 위치가 상승하였다. 친구가 볼때에는 운도 좋치만 나의 사회적 위치상승에 기분좋아하는 줄 알았다. 깊이가 없는 결과만의 대화를 하다보면 나의 노력과 나의 고뇌에 대한 부분이 쏘옥 빠지기도 하였다.
물론 변화없는 안전한 삶을 살아온 친구의 눈에는 어쩌면 꼴보기 싫은 존재일 수 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비가 오는 테라스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커피는 처음엔 캐쥬얼하게 시작했다. 채 5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눈물짓기 시작한다. 유진과 나는 관계라는 추억의 테두리안의 A를 안다. A는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사람을 저격한다. 그것도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상대방을 한방에 무너트릴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굴복 시킨다. 아주 오래전 관계의 시작부터 그녀의 심성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전은 자신을 너무나도 연약하고 착한 사람으로 필요한 사람에게는 다가간다. 사람들은 그녀를 순박하다고 하였다.
사람의 양면성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발휘될지 모른다.
유진은 그녀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을때 나는 좀 의야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 관계의 시작때부터 그녀의 심성을 보았기때문에 A와의 사적인 관계는 정리하였다. 그러나 사바사라고 유진은 A와 여행도 다니고 그녀의 연애사에도 개입하기도 하였으며 그녀의 일상에 일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어쩌면 유진은 A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그랬듯이 친구는 한번 만나자고 하였다. 그 친구와의 관계망 안에는 추억을 같이했던 B와 B의 친구C가 있다. 일상을 공유하는 친구와 B와 C는 서로를 걱정해주며 지지해주는 관계였다. 그런 관계에 내가 어느날 포함이 되버린 것이었다. 나의 일상은 늘 급변화였고 그런 나를 보는 B는 일부러 한번씩 저격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관계가 일상이 아니라 몇년만에 한번이라 뭐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냥 나는 일부러라도 B에대한 관심을 두지 않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관계라는 것은 일상이 아니면 한번씩 불쾌감을 주더라도 유지되는 것 같다.
카톡이 왔다. C가 이사한 지역의 주소와 주차를 위한 간단한 안내였다. 티맵을 켜고 거리를 확인하고 답톡을 했다. 대답이 없었다. 모처럼만의 관계속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며 친구집에 가져가기 위해 꽃꽃이를 하였다. 멈춤에서 지루했던 생각들이 활기를 찾아가는 듯 했다.
일적으로 만난 A는 실로 놀라웠다. 관계라는 추억의 테두리안의 유진을 사회적관계로 보기 시작하면서 저격이 시작 되었다. 유진은 한 분야에서 박사를 거쳐 교수출신으로 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저끝까지 유진을 끌어내렸다.
'나이 많은 너가 갈 수 있는데는 콜센타밖에 없어. 콜센타에서 3개월만 일해봐 그럼 내가 얼마나 좋은 대표인줄 알테니깐'
클라이언트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유진의 머릿속이 하얗게 백지장이 되었다고 하였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고 하였다.
유진은 그 순간 A의 눈빛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고 하였다. 아직도 그녀의 눈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차가 많이 막혔다. 주소를 보며 찾아간 C의 집 벨를 눌렀다. 환하게 웃는 나에게 C는 당황해 했다.
'너 오는 줄 몰랐는데? '
꽃바구니를 드리밀며 안부를 묻는다. 사실 C는 왜 그 관계속에 들어왔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내가 그들의 관계에 왜 계속 끼어있는지 그들은 생각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도착하였다. 이 관계의 주동자인 친구는 나와 B 그리고 사회적약자로 전략해버린 C까지를 아무런 생각없이 관계망에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는 C와 그리 그녀의 일상에 관심이 없는 나의 미세한 불편함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조금 늦게 B가 도착하였다. 문앞에 들어서는 B의 시선도 '왜 너는 거기 있니?" 잠깐 표정이 멈추기도 하였다.
관계라는 틀안에서 나는 순간 불청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진은 A와의 일적인 사회적관계를 정리하겠다고 하였다. 자신의 생각을 보관할 사람이 필요했던것 같다. 그러나 관계라는 추억의 테두리는 그냥 자연스럽게 두고 싶다고 하였다. 물론 사회적 관계가 정리되면 자연스럽게 관계라는 추억도 정리되겠지만 구지 애써서 잘라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다.
쭈꾸미와 삼겹살을 미역과 양배추 그리고 상추와 쌈밥으로 집밥을 차렸다. 아프레티프로 생오징어와 구운야채 샐러드를 내주고 막걸리 한잔씩을 하였다.
유진은 이내 많이 안정되어 보였다. 사회적 멈춤이 일부해제되는 이달말 길상사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관계에 대한 포럼도 참석하고 스스로 치유하겠다고 하였다.
늦은저녁까지의 관계라는 추억을 우리는 하하호호 웃으며 되짚어 보았다. 그렇게 그녀는 안정을 찾고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나의 집에 자계장이 들어왔다.
자가도 아닌 전셋방의 한면을 가득 차지한 자계장은 블랙과 오묘한 색상의 자계들로 화려함을 뿜어냈다. 우리집과는 안어울려 보였으나, 매일같이 걸레로 쓱쓱 닦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의 기쁨이 서린 어깨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었다.
'엄마는 자계장이 저렇게 좋을까?
B는 사회적 멈춤에도 일상의 변함없이 회사를 다니고 종자돈을 모아서 아파트 청약에 도전해본다고 하였다. 나는 대화를 가볍게 하려고 ‘교수 관잖아 실업자야’ 하고 얘기하였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다른 말을 하다말고 불현듯 나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너도 늙었나보다 그 많던 머리숯이 다 빠졌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B의 돌발행동이었다. 친구는 당황했고, C는 수숩에 나썼다.
'야 머릿숯 많았던 사람은 나지. 그리고 머릿숯 다 빠진 사람도 나고'
그냥 엎어진 사람 밀어서 아예 못 일어나게 하고 싶었나 보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특별해 보일 수 있는 나는 불쾌감의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습을 당했고 그냥 웃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어느덧 박사를 하고도 교수가 되지 못한 C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의를 그만두고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관계속의 친구와 B는 그런 그녀에게 잘될 것이라고 힘을 주고 있었다. 대학교수가 되고 박사를 한 나는 에프터 코로나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박사는 돈이 많이 들지. 아니 박사를 돈으로 산거지'
박사논문의 그 시간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야기 하면 안된다. 논문은 쓰는게 중요하지 않다. 박사과정은 지도교수와의 관계형성을 하는 과정으로 하루에도 열두변 변화하는 상황속에서 인내와 고뇌와 그리고 지구력으로 버텨야 한다. 그 과정중에 탈락하는 경우도 많기는 한데 결과적으로 그 과정을 버티고 나면 드디어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사회적 관계에서 어떠한 시련도 잘 견딜 수 있는 박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생각속에 관계라는 추억의 테두리안에서 그냥 돈으로 박사를 산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나보다.
기분전환을 해야한다. 지금 순간 관계를 엎을 수는 없다. 나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으로 관계를 만난것이기 때문이다.
빈티지카페에서 문득 만난 자계로된 화장대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환하게 웃는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자계장이 들어 온날의 그 깊은 곳의 기쁨을 담고 있다.
나의 얼굴에 서운함과 참았던 울음보가 서서히 올라오려고 한다. 나는 잠시 멈췄을 뿐인데 나를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인데 관계라는 추억의 테두리안에서 나는 위로가 아닌 저격을 당하고 말았다. 물론 무관심에서 시작된 무례함이겠지만 말이다.
엄마의 옷장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저 까맣고 화려한 자계장의 문이 열리면 서러움이 폭발할 것 같아서 그냥 돌아선다.
그냥 그 순간 관계라는 추억의 테두리를 깨고 싶지는 않았다. 초대 받지 못한 불청객이 되어버린 관계를 나는 지속하고 싶지 않아서 이다. 나도 유진처럼 이 관계를 정리하려고 한다. 많은 생각을 했다. 관계를 다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까? 아니면 그냥 그래도 이 관계를 유지할까?
사람의 심성은 변하지 않는다. 심성이란 그 사람이 타고나는 팔자라고 하였다. 처음 관계로 맺어질때 그때 내가 A와의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리 듯 끊었어야 했다.
이제 정리를 해야할 시간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조사를 챙기고 그리고 생사를 확인하고 깊이 없는 관계에서 나는 이제 빠져나온다. 나는 누구의 불청객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