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블루!!
공황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두통을 유발하는 그 시점
나와는 먼 얘기 같던 코로나블루~~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 시작됐다.
그냥 아무생각이 없던 일상
애들은 학교를 가지 않으니 삼시세끼 밥을 채려줘야하고
학습하고 있는지 체크도 해줘야 하고
뒤떨어질 수 없는 사교육 시장
학원은 코로나 블루에도 여전히 문전성시~~
밀려오는 피로감과 일상의 지루함
그리고 누가 감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콕으로 인한 우울감에
알코올 흡입량은 늘어가고 낮잠의 양만큼 불면증이 심해갔다.
그사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간 것이었다.
집을 택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환경을 중요시 한다.
어린시절 산동네 골목을 누비며 보살핌 없이 자라나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셋방살이로 주인집 아이랑 싸우기라도 한날엔 엄마의 한숨소리가 천장을 뚫을 것 같았고
밖에 공동화장실을 배변의 즐거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언제 얼굴을 쑤욱 내밀지 모를 저질갑질 주인집아들의 공포의 장소이기도 하였다.
나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닥다닥 붙어있고 좁고 북적거리는 동네는 나의 어린시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넓직넓직 조용한 동네가 좋았다.
그러고 보면 몇번의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왔었다.
한번은 그 기회를 잡아서 소형아파트를 소유한적도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식구가 늘어남에 따라서 나는 넓은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리고 적정한 시기에 아파트를 팔고 넓은평수의 신축아파트 전세로 이사를 갔다.
새아파트인데도 하자인지 층간 소음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잡음 없는 새벽이면 위층 아저씨가 술드시고 기워내는 역겨운 소리가 진짜 리얼하게 들렸다.
원주민출신 집주인이 2년이 되니 집을 사라고 또 한번이 기회가 왔으나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구지 집이 필요없었다. 내명의는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넓직넓직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깐.
그러던 중 우리는 서울을 떠나 경기권으로 이주를 결정하고 집을 돌아 보았다.
그때가 2019년 아직 코로나블루 전이었다.
서울에서 경기권으로 가다보니깐 중형아파트를 대출끼고 살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복층을 남편은 넓은 테라스를 원했다.
'뭐 이때 아니면 언제 살아보겠어~~'
나는 미사의 주택단지 평수가 좀 되는 복층 테라스로 정했다.
그리고 코로나블루가 시작되었다.
아무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코로나블루 두통으로
티비뉴스의 코로나관련 뉴스만을 볼 뿐 세상과는 담을 쌓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 아파트값은 하늘을 치솟고야 말았다.
이젠 환경에 맞춰 살던 나의 행복한 집은 곧 전세만기가 되면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길에 나앉게 생긴것이다.
깨어 있어야 했는데~~
내가 코로나블루로 정신을 놓아서는 안되었는데
이를 어쩌면 좋을지~~
나의 아이들의 뇌리속에 나의 어린시절 기억처럼
남루한 과거로 기억되면 안되는데~~
기회는 여러번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외면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께 새집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