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김창옥 교수님의 특강에는
자주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하고는 한다.
마음이 힘들어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김창옥 교수님의 특강이 위안이 되고는 한다.
진정성이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는 모습은 다 똑같아요. '
'위로를 받아 본 사람이 위로를 할 수 있어요.'
그럼 나의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삶이 치열했다.
부모님들은 항상 바쁘셨고
대화는 많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부족함도 많이 없었던 거 같다.
정갈한 엄마의 밥상은 늘 맛이 있었고,
소풍 갈 때 챙겨주지 못해 소보루빵과 서울우유를 싸서 갔던 기억
언니와 동생은 온순한 성격으로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나는 중간에 낀 자로 고집부리고 울고 불고
그러나 빗자루로 먼지 나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나는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의 큰 눈엔 그렁그렁 호수와 같았고,
보글보글 아줌마 펌이지만 고급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통통한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잘록 강조하는 옷을 입었었다.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의 모습은
언제나 나에게 당당함을 선물했었다.
나는 부족함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늘 바쁘지만 풍요롭게 남들에게 주목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의 성향은 나와 맞지 않았다.
아이의 생일파티를 키카에서 하게 되었다.
세명의 아이들이 같은 달 생일이어서 같이 모아서 키카를 전세 냈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아이들과 엄마가 모였다.
엄마들은 한결같이 멋을 내고 왔다.
전업주부도 있지만 대부분이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나는 늦게 아이를 낳아서 엄마들 중에 나이 많은 엄마에 속했다.
딸의 생일이라 나는 몸매가 다소 강조되는 원피스를 입었다.
나름 타고난 몸매의 소유자로서 옷 소화력이 뛰어난 편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나는 나를 표현하는데 남들보다는 자연스러웠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성향의 나의 딸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모는 전문직인 거 같아요'
아마도 아이들도 나름 자기 엄마에 대한 평가를 하나보다.
불현듯 여자아이 하나가 곁에 와서 계속 말을 건다.
'메이크업이 이뻐요'
아이들의 시선엔 나름 내가 이뻐 보였나 보다.
딸의 시선도 어느덧 나에게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본다.
퉁퉁 부은 얼굴에 눈썹이 반이상 날아가고 눈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덧 나는 흉측한 얼굴의 아줌마가 되어버렸다.
잠을 잘 때 한없이 이쁜 아들이 눈을 뜬다.
대뜸 달려와 모닝 뽀뽀를 한다.
참 고마웠다.
내 아이 눈에는 나의 아줌마 모습이 흉측하지 않은가 보다.
세수를 하고 차분해진 모습으로 화장을 시작한다.
차가운 토너로 얼굴의 부기를 잡고
명확해진 눈썹과 아이 라이인으로 탄생한 눈매
이젠 좀 자신감이 붙는다.
이제 아이에게 당당함을 선물할 엄마로의 변신이 끝난다.
나의 아이는 나중에 엄마에 대해서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혹시 아이가 가는 길을 막는 엄마는 아니었을까?
아이에게 당당함을 선물하는 엄마였을까?
엄마로 살아가는 길은 참 하늘이 주신 행복이자 고난이다.
매일 일어나 시작하는 하루의 아침
오늘도 생각한다.
엄마로 살게 해 줘서 고마워~~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엄마가 되어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엄마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든 점이 많아.
너를 당당하게 하는 엄마가 되어보도록 노력할게~~
엄마의 아들딸로 태어나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