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이야기. 엄마는 항상 너를 걱정한단다.
엄마가 그리 보고 싶지 않았던 건 아마도 내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근자감은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아니 너무 부딧치고 스크레치나고 대미지가 생기면서 엄마가 보고 싶어 졌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슴 깊이 숨겨놓았던 말
'엄마'
모대학의 초빙교수로 재직했던 시절 내 연구실 앞을 어슬렁거리는 남학생을 발견했다. 이 친구는 이번에 입학한 1학년 k군으로 오목조목 요즘 아이 스타일의 아주 멋스러운 학생이었다. 화이트 셔츠에 블랙 팬츠를 쉬크하게 매칭하고 태닝이 고급스러운 가죽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는 줄 모르고 연구실의 창으로 안을 살피고 있던 k군. 살금살금 다가가서 얼굴에 대고 속삭였다.
" 안에 뭐가 있어?"
화들짝 놀란 k군 귀신이라도 본 듯 뒤발질을 쳤다.
"들어와~~"
k군은 외모와는 달리 말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의자에 앉자마자부터 시작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가 시작됐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아야 했으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옷가게 아르바이트까지 살아온 인생이 고작해야 20년이겠구먼 뭐 한이 서려도 그리 많이 설였는지 원.
지금도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근자감도 대단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참 이 아이는 말이 하고 싶었겠구나~~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겠다.'
그리나 현실을 처절했다.
수업시간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k군의 오버엑션은 문제학생으로 모든 교수님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k군을 담당하려 하지 않았다.
태권도 학원에서 주말이면 명목상으로는 학부모님께 휴가를 드린다고 학생들 특별활동을 진행한다. 물론 학원의 수입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겠지만, 낯가림이 심한 아이를 둔 부모로서는 너무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주엔 '외갓집 체험'을 가기로 하였다. 시골집을 형상화해서 시골밥상과 떡 만들기, 감자 캐기, 물고기 잡기가 주 스케줄인데 토요일 하루를 통으로다가 학원에서 아이를 책임져 주는 시스템이다.
"엄마 우리 집은 왜 외갓집이 없어?"
아이는 특별활동을 마친 후 처음 나에게 질문을 한다. 왜 할머니가 있는 외갓집이 없느냐 였는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의 비밀스럽던 마음 속 깊은 곳을 아이가 활로 과녁을 명중하고 만 것이다.
엄마는 제가를 하셨고,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k군은 너무 담백하고 단호하게 이야기를 해서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현재 아빠가 생활비를 대주시고 혼자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대학에 오기 전에 잠깐 할머니랑 살았다고 하는데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인 듯 별다른 언급은 없었다. k군은 아마도 부모의 그늘이 그리운 것 같았다. 현실은 희망을 이룰 수 없어 보였다.
"세상은 다 공평해~~ 너에게 없는 것이 있으면 너한테만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거야. 내가 세상을 좀 더 살아보니 내가 제일 불행할 것 같지만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더라. 분명 k도 그런 사람일 거야. 힘을 내"
k군은 그저 웃기만 하고 그날의 길었던 k군의 면담은 끝이 났다.
학기가 지나고 졸업을 위한 마지막 2학기를 남기고 졸업작품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교수님들이 다 회피하는 학생인 k군은 당연히 내 파트의 인원이 되었고, 졸업작품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익술 할 만도 한데 k군은 성실하지도 않을뿐더러 말로만 거대한 계획이 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이 거의 완성해 갈 때쯤에도 컨셉에 대한 어떠한 재료 준비도 없었다. 살살 달래도 보고 뒤통수 쓰메싱도 날려보고 할 수 있는 건 다해 보았지만 k군은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네가 세상을 살아보니 사람답게 살려면 그래도 대학 졸업장을 있어야겠더라. 내가 너한테 대단한 작품을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졸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작품은 만들어야 졸업을 하지?"
나는 안다. 세상은 정말 보이는 것만으로 나를 평가한다. 내가 그들의 시선에 격만 갖추면 그들과의 리그에서 영원히 대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k군에게 세상에 보이는 졸업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무슨 심사가 꼬였는지 그 후로 k군은 보이지 않았다. 조교를 통해서 k군이 군 휴학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대학을 관두게 되었고, 다른 대학로 옮겨가게 되었다.
엄마의 옷장을 연다.
연자주빛 스커트를 꺼내서 내 몸에 데어 본다. 아래로 떨어지는 플리츠스커트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나온 청바지를 입은 나의 초라함을 금세 고급스러움으로 바꿔 놓는다.
세상은 보이는 것이 다다. 누군가는 첫 만남에서의 구김살 없는 나의 당당함에 부잣집 철없는 딸내미 정도로 많이 본다. 철이 없는 건 사실이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가면을 썼을지도 모른다.
나는 격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아니 격 있는 삶을 만들고 싶었다.
생일 축하 톡이 오기 시작한다. sns를 통한 알람으로 연락처가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 없이 알람이 갈 것이다. 여기에서 한 번이라도 나를 생각한 사람은 축하 톡을 하나씩 보낸다. 예전처럼 생일 주간을 정해서 일주일 내내 파티를 하던 문화는 사라졌다. 다들 사는 것에 바쁘다.
"카톡", "카톡", "카톡"~~~
"교수님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ㅎㅎ "
잊고 있었다. 2년이 지나고 복학을 했을 텐데 아무도 기댈 곳 없는 곳에서 k는 자신의 생존신고를 조심스럽게 해왔다.
"k야 나는 너에게 격 있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어 주고 싶었어. 이렇게 기쁜 생일 선물을 해주다니 너무 고맙다.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멋지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응원할게"
나는 나를 믿는다. 근자감의 근원 인지도 모르다. 세상의 보이는 나보다는 나는 많이 여리고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격 있는 내 삶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연 자주빛 스커트는 세상으로 나가는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내가 믿어주는 k군이 이제 혼자서도 세상살이 준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은 참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세상의 엄마는 항상 너를 걱정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