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6일> - 3년만에 다시쓰는 에필로그
* 앞서 재발간한 브런치북 "항상 웃고있지만 정신과에 다닙니다"에 다시 에필로그를 썼습니다.
저의 무기력과 게으름으로 인해, 이미 발간된 브런치북에 수정이 안되는 관계로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다시 재발행한 브런치북 마무리가 으응?하실것 같아서 급하게 글을 다시 하나 올립니다. 하하하)
<2025년 10월 26일> - 다시 쓰는 에필로그
2022년 10월 30일, "항상 웃고있지만 정신과에 다닙니다"란 브런치북의 에필로그를 쓸때만 해도 꽤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고요.
사실 정신건강의학과 소재로 글을 다시 쓰는 것이 처음보다 더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고혈압 약, 당뇨약 등 먹듯이 정신건강의학과 약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친한 사람들에게만 하는 말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사람앞에서는 제가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 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진 않고 심지어 감추려고도 합니다.
저는 고지식한면이 있어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만 글로 써지곤 합니다.(작가적 재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요. 하하) 그래서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5년전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때만 해도 다시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거라곤 생각못했습니다. 약물치료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 일도 과거의 추억이 되겠지, 하면서요. 하지만 2년간 병원을 다니지 않고 버티다가 회사에 복직하기 1달전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또 다시 정신과약에 의지(?)하는 저 자신을 한심해하면서요.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를 다시 찾은 후 몇 달이 지난 지금, 조금은 다릅니다. 이 글을 썼던 3년전 그때보다 많이 내려놓았습니다. 한번 고혈압약, 당뇨약을 먹으면 평생 먹어야하는 것처럼 어쩌면 평생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계속 먹는게 나을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래서? 뭐 어때!"라고 중얼거립니다.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길이 가볍진 않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고나서 가끔 너무 졸리거나 혹은 내안의 치열한 열정이 사라진 느낌이 들때 서글프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용기내서 이 글을 쓰는건,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제 자신에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생각뿐만 아니라 여기에 글로 남기면서 행동도 그러하겠다는 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렇게까지 버티는게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때 '그럴수 있도 있지'라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 중에 제 머리속의 프롬프트처럼 각인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낯선 천국"과 "익숙한 지옥"입니다. 낯선 천국과 익숙한 지옥 중 어디로 갈것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때문에 지옥같은 삶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거라고, 천국은 좀 낯설수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의사선생님을 향한 제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어쩌면 익숙한 지옥을 벗어나서 도착한 곳이 낯선 천국이 아니라 '낯선 지옥'일수도 있죠. 그런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낯선 천국'을 향해 '익숙한 지옥'을 떠나보려 합니다. 결론적으로 '낯선 천국'이 아니라 '낯선 지옥'을 만날수도 있겠죠. 하지만 뭐 어때요? 어차피 지금이 지옥인데, 낯선 지옥이나 익숙한 지옥이나 어차피 지옥이잖아요? 그러니 전 잃을게 없어서 낯선 천국을 향해서 나아가보려고 합니다. 하하하"
내가 의사 선생님께 하는 말을 음소거처리하고 겉모습만 본다면 흡사 최애 BTS 팬사인회에 온양 싱글벙글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들어설때도 웃으면서 인사하고, 심각한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며 어떻게든 밝게 풀어내려는 나를 의사선생님은 물끄러미 바라보십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이 다시 묵직하게 한마디 하십니다.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시네요.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그런데, 힘들땐 웃지 않아도 되요. 웃지 않아야 사람들도 00님이 힘든걸 알죠."
의사선생님의 이야기에도, 여전히 전 웃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닙니다. 병원 뿐 아니라 회사, 집 어디에서도 웃는게 디폴드값입니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얼굴은 웃고 있지만 힘들땐 힘들다고 말해보기도 합니다. 안하던 짓(?)을 해보는겁니다. (물론, 웃는 얼굴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제 모습을 대부분 가볍게 넘겨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조금 달라졌고, 이전보다 많이 편안합니다. 그렇게 익숙한 지옥을 벗어나려고, 제 나름대로의 낯선 천국을 조금씩 찾아갑니다. 그러다 낯선 지옥이 나오면, 또 다시 낯선 천국을 찾아서 가보려고요.
끝으로, 이 글을 쓴 것은 또 하나의 계기가 있습니다.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하면서, 그 동안 글을 쓴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순간들이 꽤 오래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가 제 브런치를 보고 큰 위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될 때 도움이 되었다면서 말이죠.
그 때, 그친구에게 못다한 고백으로 끝맺으려 합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내가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때 저 역시 쉽지 않은 순간들을 지나고 있었다고. 그렇지만,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공감을 주었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시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요. 그리고 친구는 제 글을 읽고 시행착오를 덜 겪고, 조금은 쉽게 낯선 천국을 찾길 바란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덧.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들이 '익숙한 지옥'이 아니라 '낯선 천국'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이미 익숙한 천국에 있다면 더 좋고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