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훈련 일지 D-28
*금주의 러닝 (0/7)
지난주 일요일, 눈물을 머금고 35km LSD를 포기한 뒤, 나는 월요일이 되자마자 바로 당일 신경외과 방문 예약을 잡았다. 야근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서 빨리 회복하고 싶었다. 저녁시간에 잠깐 방문한 신경외과에서는 친숙한 선생님이 나를 맞아주셨다. “또 러닝이에요?”
이 신경외과를 방문한 것은 근 1년 만이다. 작년 가을 첫 하프마라톤 직전에 고질적인 오른쪽 무릎 통증으로 처음 방문했었다. 선생님은 뛰지 말라고 하셨지만 이미 예정된 하프마라톤을 안 뛸 수는 없는 터. 앞에서 고개만 끄덕이고는 바로 그 주말에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는 왼발 족저근막염까지 달고 나타난 나를 보고 선생님은 혀를 차셨다. 그리고 한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통증 때문에 한 달 넘게 치료를 받았었다. 오랜만에 또 러닝 때문에 나타난 나는 쭈굴거리며 말했다. “제가 풀마라톤이… 한 달 뒤에 있는데요….” 작년에 선생님이 말하셨다. "카본화는 신지 마세요, 그걸로 많이 다쳐서 와요." 그리고, 음 오 아 예… 바로 제가 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일단 치료해 보자고 대충 주사와 충격파를 처방해 주시고는, 주사 놓으면서 초음파를 보시더니 종아리 근육에 미세한 손상이 있다고 하셨다. 단순히 뭉침이 심한 건 줄 알았는데 정말 다친 거였다니, 지난주에 안 뛰고 쉬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사지까지 야무지게 받고는 회사로 돌아와서 폭풍야근을 했다.
회복은 생각보다 훨씬 더뎠다. 주사를 맞은 그날은 통증이 훨씬 심해졌다. 종아리가 붓고 통증과 열감이 있어서 밤에 불안한 마음에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리고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밤 10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유로 잠이 잘 안 오고, 기껏 잠이 들어도 잠을 설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근육이 안 붙는 건. 목요일 점심시간에 잠깐 병원을 방문해서 의사 선생님께 이제는 걸을 때도 아프고 왼쪽 발바닥도 욱신거린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사 선생님은 진료차트에 ‘악화…?’라고 적으셨다. 이후에도 안 나으면 허리 쪽도 검사해 보자고.
분명 경미한 부상일 텐데 생각보다 빨리 낫지 않으니까 마음이 더 조급하고 불안해졌다. 지금의 통증이면 6시간 반이라는 넉넉한 컷오프타임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원래는 불안한 마음에 자전거라도 타려고 했는데, 그냥 곱게 쉬었다. 뭐, 일주일 내내 야근한 탓에 자전거를 딱히 탈 시간이 없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 28일이나 남았다는 것. 만약에 코앞에 닥친 상태에서 이런 상황이 생겼으면 얼마나 더 절망적이었을까? 여전히 조급하지만 그냥 합법적(?)으로 안 뛰고 쉴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기로 했다. 함께 훈련하던 러닝크루 사람들이 나날이 더 성장하는 기록을 인스타에 올리는 게 너무 부럽지만, 욕심내지 말고 완주라는 목표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고의 전략은 완벽히 회복하는 것! 그래도 한주 제대로 쉬었더니 많이 나은 것 같다. 다음 주부터는 살살 뛰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자전거라도 실컷 탈 수 있었으면 그새 너무 달리기 좋은 시기가 와버렸다!
지금 다친 것 때문에 한 가지 더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이번 기회로 나의 문제점에 대해서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거다. 종아리가 아파서 치료받으러 간 건데 도수치료 해주시는 선생님들이 내게 “발목을 많이 풀어주셔야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발목이 상당히 뻣뻣한 편인데, 그동안은 사실 무릎만 신경 썼지 발목과 아킬레스건 쪽에는 별로 신경을 안 썼다. 그게 종아리로 이어져서 지금 종아리를 다친 거라고 하셨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어쩌면 나의 뛰는 자세가 문제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허벅지를 앞으로 차올리는 러닝 자세가 좋은 건 줄 알았는데, 그러면 발목을 까딱여야 하기 때문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다시 러닝을 하게 된다면 천천히 자세부터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한 러닝 인플루언서가 러닝 초보자와 숙련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이렇게 말했다. '부상을 이겨내 본 적이 있는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좀 알 것 같다. 부상을 극복하고 계속 뛸 수 있다는 것은 본인의 문제를 깨닫고 고치고 다시 러닝에 애정을 붙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도 그런 단계면 좋겠다. 작은 부상으로 더 오래 건강히 지속가능한 러닝 방법을 깨닫게 된다면, 아주 럭키비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