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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ily ever after starts now!

by 쪼이



나이가 나이라서인지, 작년과 올해는 결혼식이 유독 많다. 매달 빠지지 않고 한두 개씩은 있는 듯하다. 전에는 신랑 신부가 대체로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는 다 내 또래 친구들이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탓에 동기들보다 직장생활을 빨리 시작한 나는 결혼식을 가본 경험도 아마 내 친구들에 비해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마 30번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사회초년생 때의 나는 청첩장을 받은 결혼식은 거의 다 갔다.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초대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누군가의 삶에서 어쩌면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순간일 텐데, 그 자리에 제가 함께 있는다는 게 너무 뜻깊은 것 같아요!”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하는 나를 보고 선배들이 말했다. “소연 참 착하다.” 그때는 결혼식을 가기 귀찮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직장인이 되고 처음 가본 부서 선배의 결혼식에서 나는 급기야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나는 영원히 그렇게 모두의 결혼식을 글썽이면서 볼 사람일 줄 알았다. 야속한 세월은 나의 MBTI를 F에서 T로 만들었고,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결혼식에 별 감흥이 없어졌다. 급기야는 어떤 결혼식에서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기도 했다. 이런 불경하고도 미안한 마음을 가질 거면 그냥 오지 말걸, 그게 서로에게 더 좋았을 텐데. 그때부터는 시간이 된다 하더라도 돈만 보내고 가지 않는 결혼식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내게, 올해는 유독 뭉클한 결혼식들이 있었다. 바로 내 오랜 친구들의 결혼식이었다. 그들이 처음 연애를 시작하던 순간마저 내 추억 속 한켠에 남아 있는.

대략 3학년 정도 되었을 때였나. 우리 과에는 몇 년 동안 오래 사귀고 있는 동기 CC가 몇 쌍 있었고, 친해질 친구들은 이미 친해진 터라 더 새로운 커플이 생길 일은 없을 것 같던 때였다. 그건 착각이었다. 유독 더 친해지는 것 같다 싶던 친구들이 보였고, 둘이 뭐 있는 거 아냐!? 하더니, 머지않아 사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랑도 친분이 있던 친구들이라 더 신났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호감이 있었지만 친한 친구를 잃을까 봐 고민을 오래 했다고 했다. 그때 그 고민을 듣던 한 친구가 조언을 했다고 했다. “야, 너네 오랫동안 친구로 남을 거 같지? 어차피 나중에 다 결혼하고 그러면 남사친 여사친 없어! 그냥 잘해봐!!”

그 얘기를 나한테 해주면서 그 친구가 ‘만약에 나중에 헤어졌는데 5년 뒤에 결혼식장에서 마주치잖아? 그러면 나 바로 울 것 같아!’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5년도 더 지난 뒤 봄에 그들은 결혼식장에서 만났다. 다행히 헤어지지 않고 신랑 신부로. 그리고 딱히 울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동기커플을 바라보는 다른 동기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나도 마음이 찡했다. 그 커플을 바라보는데, 그 커플과 함께 했던 나의 대학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추억에 내가 배경으로, 나의 추억에 그들이 배경으로 녹아 있는 듯했다. 잘 만나줘서 고마워, 그 말을 마음속으로 전했다.

얼마 뒤 초여름에는 또 다른 반가운 결혼식이 있었다. 바로 나의 동아리 가장 친했던 선배의 결혼이었다. 미국으로 유학 가있는 선배인데, 결혼식을 하러 한국에 잠깐 온다고 했다.

그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나의 대학생활의 추억에 깊숙이 녹아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서로의 거의 첫 연애를 지켜봤고, 그 과정에서의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내가 헤어질 것 같다고 처음 얘기를 꺼내면서 눈물을 흘린 것도 그 선배 앞에서였다. 마찬가지로 선배 역시 헤어진 여자친구한테 다시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내게 하소연하곤 했다. 아직도 대학교 기숙사를 지나갈 때마다 그 선배 생각이 나곤 한다.

평소 연락을 잘하지 않는 내가 그 선배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그 선배 덕분이다. 선배는 주기적으로 먼저 잘 지내냐며 전화를 해오곤 했다. 내가 송도로 취업한 후에도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선배에게 회사생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꼰대스러운 사회생활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은 갑자기 밤에 술에 취한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랑 잘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질투 나고 속상해서 술을 많이 마셨다는 거다. 술김에 그 여자한테 ‘내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모르냐’ 뭐 그런 식의 투정을 부렸는데 어떡하냐, 짜증 난다, 뭐 그런 얘기를 나한테 늘어놓았다. 항상 여유 있어 보였던 선배의 그런 모습은 또 처음이라 나는 마냥 웃기고 재밌었다. 그때 그 여자분이 바로 지금의 신부님이다.

둘이 결국 사귀기로 했다는 소식 이후로도 성격이 맞지 않는 부분, 미국으로 유학을 가야 되는 현실, 등등 여느 커플들처럼 헤어짐을 고민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나는 간간히 그 소식들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결국 맞이하게 된 그들의 결혼식에서, 식 중간에 그 선배가 직접 만든 영상이 나왔다. 지금까지의 그들의 시간이 담긴 영상 중간중간에 그들은 귀엽게 춤을 추었다. 그 잔망스러운 모습은 나에게는 늘 어른이었던 선배가 연인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나는 행복과 안도감으로 괜히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후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날의 여운이 계속 남는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도 함께 가겠다는 노래 가사처럼, 그 순간 그들은 오롯한 그들만의 외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지
거긴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을
그래 넌 두 눈으로 꼭 봐야만 믿잖아
기꺼이 함께 가주지

이대로 이대로
더 길 잃어도 난 좋아
노를 저으면 그 소릴 난 들을래

<외딴섬 로맨틱>



결혼식을 다니면서 유독 더 애틋한 순간들이 어떤 순간들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들의 서사를 내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경우가 특히 그런 것 같다. 모든 연애와 사랑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다. 결혼식의 관객이 되는 것은 그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 편의 서사가 완성되어, 결혼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완벽한 해피엔딩을 읽는 기분이 든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가득 담고 돌아서면 그날은 나 역시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얼마 전에는 또 다른 나의 오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한 순간 한 순간 흘러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밌었고, 한편으로는 새삼 내가 그 친구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깨달을 수도 있었다. 비록 결혼식이 다 똑같고 형식적이라는 말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그 자리가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와 불러오는 감정들이 분명 있다. 그래서 여전히 결혼식 초대를 받으면 달갑다는 마음이 더 많이 든다.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다. 부디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 하는 내 친구들의 인생 2막이 행복하기를. Happily ever after starts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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