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훈련 일지 D-56
*금주의 러닝 (4/7)
수: 8.43km/7’08"
목: 3.18km/6’31"
금: 5.80km/6’18"
일: 17.27km/6’15" (워밍업 1.2km)
지난주 일요일 25km LSD 이후, 이번 주 내내 아주 피곤했다…. 월요일과 화요일엔 야근까지 더해서 도저히 뛸 엄두가 나지 않았고, 수요일에야 뛸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비가 왔다. 뒤늦은 리커버리 삼아 퇴근하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천천히 8키로 뛰었다. 목요일에는 좀 더 빡세게 달려볼 요량으로 채비를 해서 공원으로 향했는데, 이상하게 너무 힘들었다. 습한 날씨 탓인 듯했다. 고작 3키로만 뛰고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금요일에는 러닝을 같이 해주겠다는 남자친구 덕분에 5km를 뛰었다. 남자친구는 완전 초보라 같은 코스로 뛰지 않았는데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의식이 되었는지 목요일보다는 더 잘 뛰어졌다.
그래봤자 고작 5키로였다. 작년에 한창 열심히 뛸 때 나는 10km를 5’07" 페이스로, 21km를 5’35" 페이스로 뛰었었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6’30" 페이스로만 뛴다. 풀마라톤을 신청한 것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작년의 나였다. 그때의 나는 1년 뒤 내가 더 실력이 늘어있을 줄 알고 겁 없이 신청했는데, 1년이 지난 나는 그때의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잘 뛰었는지 가늠이 안 간다. 그래서 매번 뛸 때마다 괜히 주눅이 든다. 항상 나는 지난 나보다 못하니까.
이번 주 일요일 새벽 훈련은 21km 지속주였다. 나는 가장 느린 그룹을 신청했다. 4시간 20분 목표 그룹이었는데, 풀마라톤을 4시간 20분 이내에 완주하기 위해서는 6’10" 페이스로 뛰어야 한다고 했다. 6’10" 페이스로 21km라… 토요일 밤에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찍 자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면 더 잠이 안 오는 법. 새벽 5시에 일어나기보다 새벽 5시까지 안 자는 게 더 편한 나는 결국 두어 시간 정도 간신히 눈을 붙였다. 알람을 듣고 일어났는데 몸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또 약한 소리를 했다. 잠을 너무 못 잤는데, 이 컨디션으로 뛰면 몸에 안 좋지 않을까? 남자친구가, 일단은 갔다가 힘들면 도중에 돌아오라고 다독여줬다. 그래, 일단 가면 5km라도 뛰겠지. 고민하느라 조금 지각했다.
다행히 몸풀기로 찬찬히 뛰는데 컨디션이 괜찮은 것 같았다. 그래서 본 훈련인 6’10"에 들어갔다. 최근에 뛰던 것보다 빠른 페이스였다. 트랙을 몇 바퀴 도는데 어쩌다 선두에 서게 되었다. 내가 이끄는 대로 사람들이 발맞춘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혹시나 내가 너무 느려서 다른 사람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봐 마음이 급했고, 나도 모르게 조금씩 오버페이스를 했다. 버겁고 힘든데 선두니까 대열을 이탈하지도 못했다. 멈추면 끝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원래 안 올까 고민하던 훈련을 온 거니까 이 정도만 뛰어도 만족이라고 합리화했다. 이 대열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결국 10km 즈음되어서 다 같이 급수를 위해 잠깐 멈춘 사이, 나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도망쳤다.
잠깐 숨을 돌린 뒤, 먼저 앞서간 사람들을 쫓아 따라가려는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나는 이내 걸었다. 그래도 10km라도 뛰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혼자 뛸 때는 깔짝대기만 하는데 역시 같이 뛰니까 더 많이 뛸 수 있었다. 훈련 나온 보람이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주에는 꼭 일찍 잘 자서 좋은 컨디션으로 임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벤치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런 나를 보고, 부상으로 쉬고 계시던 한분이 말을 걸었다. 하반기 대회 얼마나 남았어요? 나는 멋쩍게 대답했다. 아, 네, 풀마라톤 한 50일 남았는데, 오늘은 힘들어서 그만하려고요. 그러자 그분이 짓궂게 외치셨다.
아 그럼 지금 당장 가서 뛰어야지 뭐해요!!!
그 말이 벼락처럼 내리쳤다. 내가 뛰는 마라톤이 어떤 환경일지 난 아직 모른다. 그날의 내 컨디션도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지금도 마음대로 잠들기가 어려운데 시차적응을 해야 하는 미국은 어떨 것인가. 그런데 왜 나는 최선의 상태일 때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건 그냥 당장의 힘듦을 미루기 위한 핑계다. 그렇게 미루다 보니 벌써 50일 밖에 안 남았다. 어차피 42km를 뛰다 보면 컨디션은 아주 안 좋아질 거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컨디션이 좋을 때 뛰는 연습이 아니라 컨디션이 안 좋을 때 견디고 뛰는 연습이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 가까워질 때마다 얼른 합류하라고 격려해 주는 목소리들에 힘입어, 나는 다시 대열로 뛰어들어갔다.
비록 훈련 시간이 다 되어서 목표였던 21km는 못 채웠지만 18km는 채웠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더 뛰었을 것 같다. 포기하고 잠깐 쉰 시간이 뒤늦게 아쉬워졌다.
나는 늘 생각이 많다. 머리만 오지게 굴리고 정작 실천하는 것도, 이뤄내는 것도 별로 없다. 아마 생각만 하지 말고 뭐라도 했으면 뭐라도 이뤘을 것이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불안하다고 징징댈 바에, 그냥 한 번 더 뛰러 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행동하는 것이다. 생각 없이 일단 뛰면 오늘 훈련 지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뿌듯한 것은, 포기를 번복하고 다시 뛰었다는 것! 지난번 글에, 달리기는 한 번 걸으면 끝이라고 적었었다. 한 번 해이해진 마음을 다시 다독이는 것은 나라는 인간한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다행히 내 주변에는 의지박약인 나를 끌어주고 당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더더욱 훈련 잘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