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훈련 일지 D-49
*금주의 러닝 (4/7)
월: 8.01km/6’22”
수: 3.00km/5’58”
금: 3.15km/7’15”
일: 30.06km/6’31”
야근의 강도와 러닝 횟수는 정확히 반비례한다. 비교적 한가했던 월요일 이후로, 이번 주 내내 야근으로 러닝을 제대로 못했다. 겨우 3km 찔끔 할 뿐이었다.
특히 목요일에는 거의 자정까지 야근을 했다. 그다음 날에는 너무 못 뛰었다는 강박 때문에 굳이 굳이 뛰었다. 그런데 사실 피곤할 때는 오히려 쉬어주는 게 낫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오히려 더 훈련을 못하기 때문이다. 무리한 탓인지 토요일은 몸살 걸린 것처럼 기운이 없었고, 덜컥 불안해진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일요일 훈련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이번 주 훈련은 30km LSD였다. 2주 전에 25km를 뛰었고, 이번 주에 30km를 뛰면 그다음 2주 뒤 35km를 마지막으로 장거리 훈련은 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매 훈련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진지해진다. 특히 거리를 점점 더 늘려가는 LSD는 꼭 완주해내고 싶었다. 이 훈련들을 성공하느냐 안 하느냐가 나에게는 마라톤 완주 여부가 달려있는 것만 같았다. 30km도 끝까지 못 뛰는데 42km를 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일요일 훈련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거의 무슨 대회 준비 수준이었다. 에너지젤을 어느 타이밍에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해서 챙기고, 스포츠 테이프를 자기 전에 양 무릎에 단단히 붙이고 잤다. 그리고 밤 11시부터 눈 꼭 감고 잠을 청했다.
비교적 푹 자고 마주한 새벽 5시. 아침 훈련을 이렇게 잘 자고 마주한 게 얼마만이던가. 괜히 더 컨디션이 좋게 느껴졌다. 날씨는 지난번 25km를 뛰었을 때보다 습하고 더웠다. 그때가 정말 반짝, 처서매직이 찾아왔던 거였구나. 다들 뛰면서 탄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좋아서였을까. 첫 바퀴 5km가 금방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5km마다 잠깐 물을 마시고는 빠르게 다음 바퀴를 출발할 수 있었다. 매 바퀴마다 누군가는 앞장섰고, 이 대열에서 이탈하면 다시 합류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간의 훈련으로 체득한 나도 열심히 따라붙었다. 그렇게 25km를 완주한 뒤 함께 뛰던 사람들은 쉬거나 저마다의 페이스로 흩어졌다. 같이 뛸 사람 없이 혼자 남아서 어떻게 할지 잠깐 망설이다가, 앉아 쉬는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지막 바퀴를 뛰러 나갔다. 이 바퀴를 완주해야 지난번의 나보다 더 발전하는 거니까.
신기한 건, 지난번에는 20km 이후에 도저히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남들보다 뒤처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25km를 뛰고 나서 혼자 5km를 마저 뛰는 그 시점에서 막판스퍼트하듯 좀 더 속도를 올려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내 마라톤 목표 페이스는 6'10"이다. 후반부에 이미 무거운 다리를 끌고 내가 그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거란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뒤로 갈수록 더 느려지기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카페인이 든 마지막 에너지젤 덕분인지, 페이스를 올려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더니 지친 다리가 생각보다 가볍게 들렸다. 물론 오래 지속하진 못했지만, 다시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30km를 끝내는 순간에 다시 반짝 전력으로 뛰었다. 마치 대회 finish 라인 들어오는 것을 연습하듯.
그런 나를 보고 크루 사람들이 "몇 키로 채웠어요?"라고 물어보았다. "30km요!" 웃으면서 대답을 내뱉는 마음이 벅차게 흐뭇했다. 이제 내 최장기록은 30km다! 내가 아직 러닝 고수가 아니라 다행인 점은 갱신해야 할 기록이 차고 넘친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더 빠르게, 더 길게 뛰어야 할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매 순간에 도달하면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30km를 성공했으니 이제 대회에서도 그다음 12km는 어찌저찌 비벼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야 진짜 완주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30km를 뛴 나는 좀 더 절뚝였고, 발이 부어서 신발이 꽉 끼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이다. 그다음은 또 어떨까? 다음 훈련이 두려우면서도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