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훈련 일지 D-42
*금주의 러닝 (3/7)
화: 7.05km/5’59”
수: 6.57km/5’26”
일: 워밍업 3.09km/6’14”, 10.10km/5’32”
러닝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카본화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신발 밑창에 단단한 카본 플레이트를 넣어서, 발이 땅에 닿을 때 반발력으로 튕겨나갈 수 있도록 만든 신발이다. 언더아머를 입으려면 3대 500을 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카본화도 실력 얼마가 되지 않으면 단속 나온다는 말이 퍼져있다. 하지만 카본화의 경우는 진짜다. 그 반발력을 견디지 못하는 초보가 신기엔 부상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러닝 초보로서는 엄두도 못 낼 신발이었다.
대회를 40여 일 앞두고, 갑자기 이제서야 카본화를 사고 싶어 진 것은 지난주에 뛴 30km LSD 이후 더 큰 신발을 살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8월을 맞아 러닝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되었고 하프도 몇 번 완주했다. 이 정도면 이제 사도 되지 않을까? 자세가 안 좋은 탓에 무리가 갈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풀마라톤을 앞두려니, 기록 욕심은 없지만 최대한 덜 힘들게 뛰기 위해 온갖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닝화는 더더욱 길들이는 게 필요하므로 당장 사야 했다. 그리고 내 신념 중 하나, 이왕 살 거면 빨리 사고 효용을 누려라! 그래서 결국 나는 에너지젤도, 테이프도, 옷도, 그리고 신발까지도 다 구비하기에 이르렀다. 카본화는 조상님이 바닥에서 밀어주는 느낌이라던데, 제발 우리 조상님도 도와주세요!!!
최대한 반발력이 많이 심하지 않고 안정적인 카본화를 고르다 보니 퓨마의 디비에이트 나이트로 엘리트 3이라는 모델을 고르게 되었다. 도착한 그날 바로 신고 친구랑 뛰러 나갔는데, 정말 오랜만에 5분대 페이스로 친구가 놀랄 정도로 잘 달렸다. 그날 유독 더 시원했던 탓인가? 그다음 날엔 러닝크루 정규런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조 페이서가 폭주해서 5’26” 페이스로 달리셨다. 그런데 나도 그에 발맞춰서 낙오하지 않고 잘 따라갔다. 오예! 이 정도 속도로 달려본 것은 정말 올해 처음인 것 같았다. 카본화… 이렇게 좋은 거였나!?
주 후반에는 야근과 컨디션 난조로 쉬다가, 일요일 10km TT 훈련에 참여했다. 지금까지 계속 장거리 훈련을 해왔기에 비교적 짧은 거리를 빠른 페이스로 뛰는 훈련은 오랜만이었다. 며칠 전 5’26” 페이스로 뛰어봤던 터라, 나는 5’30” 조를 신청했다. 마치 대회에 임하는 마음으로 10km를 한 번도 안 쉬고 달려보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훈련은 대회와 다른 법… 시작은 순조로웠다. 지난주에는 30km를 달렸는데 10km 정도면 금방이겠지! 호기롭게 선두에서 시작했으나, 5km를 넘어가면서 함께 하던 분들이 급수를 위해 대열에서 이탈하셨다. 다들 쉬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나도 더 힘든 것 같았다. 뺑글뺑글 도는 트랙 훈련인 탓도 컸다. 이제 고작 5km! 라며 버텨보려던 마음은 한 바퀴 한 바퀴 돌면서 급수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요동쳤고, 결국 6.5km 정도에서 나 역시 멈추고 물을 마시러 갔다.
지난 훈련들에서 나는 배웠었다. 한 번 쉬어도 다시 뛸 순 있다. 그런데, 아주 힘들다! 화장실까지 다녀와서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얼마 뛰지 않아 다시 쉬게 되었다. 실전에서 이러면 망하는 거다.
같이 끝까지 마무리하자고 이끌어주신 주변 분들을 따라 다시 뛰기 시작했다. 2km도 안 남았는데 힘들다고 힘들다고 찡찡대며 점점 페이스가 느려지는 나를 보고 그분들이 TT는 한계를 시험하는 건데 지금 나는 별로 안 힘들어 보인다고 하셨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맞냐고. 나는 지금이 내 한계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심박이 부족한 건지,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건지 다시 물으셨다. 흠, 글쎄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두고는 남은 힘을 짜내 전력질주를 하기로 했다. 딱 400m! 그제야 무겁던 다리가 다시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문제는 심박이나 다리가 아니라 정신력이었다.
일요일 아침 훈련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의 기분은 그날 훈련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 돌아서는 기분은 개운하지 않았다. 지난번 장거리와 달리, 오늘은 거리를 채우기만 하는 것이 훈련의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해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아 쉬었던 건데, 그 힘듦이 잊히고 나니 의심이 남는다. 나 정말 힘들었던 거 맞나? 그게 정말 나의 최선이었나? 최선을 다했다면 아쉬움이 없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 걸 보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보다.
대회를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을 준비해 나가는 요즘. 달리기를 위해서 장비나 에너지젤은 갖췄지만, 여전히 내게는 뭔가 부족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기분이 이렇게 찝찝하다. 이 찝찝한 기분을 잊지 말자. 그래서 다음에는 멈추기 전에 지금의 이 기분을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