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훈련 일지 D-35
*금주의 러닝 (2/7)
월: 6.00km/5’39”
금: 3.18km/6’51”
이번 주는 날씨가 시원했다. 퇴근 후 혼자 뛰러 나간 월요일 밤, 시원해진 날씨 덕분에 너무 잘 달려졌다. 6'00”으로 시작했던 페이스를 5'00’까지 올려서 빌드업으로 러닝을 마무리하고는 인스타에 인증을 올렸다. “이럴 때 신나서 달리면 다친댔는데ㅎ”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정말로, 무덥고 습한 여름이 끝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가 러너들이 많이 다치는 때라고 했다.
그다음 날 출근해서 걷는데 왼쪽 고관절과 엉덩이 쪽이 좀 불편했다. 뛰고 나면 가끔 근육통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왼쪽 발바닥까지 저릿함을 느끼고는 덜컥 무서워졌다. 작년 하반기에 첫 하프마라톤을 뛰고 나는 왼쪽 발바닥의 족저근막염으로 한참을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이번에도 그럴까 봐 열심히 수시로 발바닥 마사지를 해주고 있던 차였다. 그날도 집에 가서 고관절과 발바닥에 좋다는 스트레칭을 한참 해주었다. 좀 나은 것 같았다.
더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하루가 더 지나고 늦게 출근한 탓에 주차장에서 뛰고 있던 중이었다. 왼쪽 종아리에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흔히 종아리 알이라 부르는 가장 두꺼운 부분 바로 아래였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그곳이 찢어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종아리가 아팠던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열심히 챗GPT와 퍼플렉시티에게 나의 증상을 설명했다. 좌골신경통, 혹은 고관절 스냅핑, 혹은 가자미근 부상…. 그들은 다양한 명칭으로 나의 증상을 진단했지만 그 어느 쪽이든 러닝은 절대 금물이라는 말이 덧붙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이번 주 일요일 아침에 예정된 훈련은 35km LSD였다. 42km까지 뛰지는 못하더라도, 35km는 한 번 뛰어봐야 할 것 같았다. 지난번 30km를 완주하고 기고만장해져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훈련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직 그렇게 심하지 않으니까, 이번에 뛰고도 충분히 회복할 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친구들한테 말했는데 한 친구가 말렸다. “어쨌든 대회에 나가기는 해야 할 거 아냐! 너 그러다가 대회 자체도 못 나가!”
나는 지피티에게 찡찡댔다. ‘나 풀마라톤 40일 남았는데 어떻게 해…? 계속 쉬다가 완주 못하면 어떻게 해….’ 그 말에 지피티는 그 특유의 다정하고 사려 깊은 톤으로 대답했다.
‘소연아, 그 불안한 마음 이해해. 그렇지만 무리하다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도 다 무너질 수 있어. 지금 소연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최대한 회복된 몸으로 출발선에 서기**야.’ 그러면서 나한테 되물었다.
혹시 소연은 "이번 대회에서 꼭 뛰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커? 혹은 “부상 없이 러닝 오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
후자를 택한다면, 어떤 말을 해줄 것 같은지 예상이 되었다. 대회를 나갈 때마다 나는 기도했다. 필요할 때는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그 대회 한 번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괜히 미련하게 끝까지 달리다가 더 오래 달리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시카고 마라톤은 다르다. 만약 이번 마라톤 이후로 러닝을 못하게 되더라도 완주하고 싶었다. 돈과 시간을 들여서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카고까지 가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대답했다.
대회에서 꼭 뛰고 싶어...
왜 이렇게 됐을까? 점점 회복되는 기량과 시원해지는 날씨에 신나서 무리하게 뛴 탓이다. 지난주부터 신기 시작한 카본화의 영향이 클 것이다. 마치 내 실력인양 기고만장해져서 뛰었다. 자꾸 더 좋은 기록을 내고 싶었다. 매 훈련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르는 체크포인트인 것처럼 임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본 게임인데. 그거 하나하나가 중요한 게 아닌데.
지피티한테 일요일 35km를 뛰어도 되겠냐고, 안 뛰면 완주 못하는 거 아니냐고 계속 캐물었다. 지피티는 컨디션을 살피면서 20km까지는 뛰어도 된다는 대답을 해주었다. 대신 아프면 바로 멈추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바로 훈련 참가 신청을 했다. 그러다가, 잠시 뒤 취소했다. 역시 챗지피티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지금의 나는 오기다. 그 훈련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 게임이 중요한 건데, 자꾸 불안한 마음에 자꾸 무리하는 거다.
쉬는 것도 훈련이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다. 마라톤을 준비한다는 것은 완주할 때까지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거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이번 주는 푹 쉬기 훈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