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영양 연당마을 서석지
"연당蓮塘은 연꽃을 심은 못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서석지瑞石池를 일컫는다. 성균관 진사를 지낸 동래정씨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선생이 서석지를 만들고 대대손손 뿌리내리는 터전을 이루었다. 정영방은 퇴계 제자 우복 정경세에게 수학했는데 퇴계학파는 이황에서 유성룡, 정경세, 정영방으로 큰 흐름을 잇는다.
서석지엔 여름이면 군자인 양 연꽃이 고아하게 피고, 가을엔 사백 살 넘은 은행나무가 황금이파리를 연못으로 쏟아붓는다. 은행잎도 연꽃도 진 겨울 서석지는 정갈하고 고요하다. 서석지 정자 경정敬亭 마룻바닥에 겨울 해가 들면 난간 문양이 빛과 그림자로 도드라진다. 마른 연꽃 줄기만 남은 연못엔 잔설이 쌓여도 적막하다기보다 따스하다.
영감집, 장독집, 사당, 빈집, 얼굴 뭉개진 석불 좌상…, 돌담과 기와가 허물어진 채 늙어가는 고가, 한 칸짜리 푸세식 화장실, 이끼 낀 담장 아래 놓인 깨진 장독, 문살 사이로 광목처럼 창호지가 너풀대는 집, 마루에는 먼지가 쌓이고 문살이 바스러질 듯 홀로 견디는 집….
대대로 가족을 품었을 고적한 빈집은 민얼굴로 삭아가는 중이었다. 빈집 회벽에 무늬를 드리운 처마 그림자마저 애틋하고 안쓰럽다. 허물어지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토담을 허물고 새로 쌓거나 말쑥하게 고친 집에서는 와 닿지 않던 그런 것들이 오히려 잔상에 남는다.
마을은 석문 선조의 선비정신을 기리고 마을을 살리자는 목적으로 마을 축제도 연다. 예전에 왔을 때는 봄이었고, 이번에는 대한 무렵. 초록색이 퇴색하고 노란 잎이 연못 위로 펄펄 쏟아지는 장관도 꼭 봐야겠다. 마을을 안내하고 서석지 사계 사진을 보내준, 석문 공의 성정을 닮았을 법한 후손 정00 선생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