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3. 31.
글 쓸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말은 어련한 변명이지 싶다. 그냥 귀찮은 거다. 오랜만이라고 할까 처음으로 이불을 털고 방청소를 하고 방 구조를 살짝씩 바꾸느라 좀 상쾌해졌다. 공간 활용을 제대로 하려면 침구를 무조건 벽에 밀어 붙여야 한다.
아, 일기를 쓰려고 왔더니 할 말이 없다. 대부분 조류사회로 인스타그램에 넘겨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연일 취업에 실패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거나 다른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고양이들이 꽃다발과 함께 노는 모습 따위를 찍은 사진 같은 걸 보고 있자면 나는 내가 뭘 하러 여기에 온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일상은 똑같고 바이오리듬도 아주 건강한 데다 정신도 몹시 말짱하다. 오늘은 강변에서 잠깐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뿐이지 우울하지는 않았다.
우울에 근접한 나날을 살아오면서 나는 어떻게든 스스로에 관한 처세를 어느 정도는 완성시킨 게 분명하다. 또 이건 <김과장>이 어느덧 종영해버려서 나타나는 단기적인 외로움인지도 모르겠다. 시끄러운 룸메이트의 휘파람 소리나 거슬리는 입버릇이나 도저히 귀 열고 못 들어줄 수준의 노랫소리도 하루하루 날 지치게 하는 요인의 80%정도는 차지하는 것 같지만. 이건 아무래도 과장이다. 취소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쓴 건 오랜만이다. 나는 내가 할 말이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농축되어서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로 얽혀 배출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애매한 말투도 도통 고쳐지지 않는다.
주말이 되면 입학식을 며칠 앞둔다. 오리엔테이션은 하루 앞둔다. 필요한 서류부터 작성하고 입국하고나서 몇 번 펼쳐보지 않은 <사피엔스>나 <미움받을 용기>도 좀 살펴볼 생각이다. 언제 한번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번역 용도로 썼던 구글 블로그를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새로운 소설 시리즈 하나가 업데이트 되었다고 '인생 뭐 있어. 이렇게 즐거운 일들이 많은걸.' 하는 아주 기특한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