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5. 30
대학생 김씨는 우울에 빠졌다. 어느새 2020년 하반기가 쥐도 새도 모르게 다가와서가 아니다. 하긴 당연히 쥐나 새에게 체계화된 날짜 감각이 있을 리 만무하다. 만일 그러한 문명을 가진 쥐나 새 단체가 있다면 이메일로 제보를 부탁한다.
아무튼 김씨는 울적해졌다. 과제가 많아서도 아니고, 뭇 인류의 가련한 일상을 훔쳐 내동댕이 치고 갈기갈기 찢어 짓밟은 어느 바이러스 때문도 아니다. 김씨는 원래부터 우울했다. 처음 죽음을 결심한 열 살때부터 지금까지 김씨는 간헐적으로만 행복했지 한번도 지속적으로 즐거운 적이 없었다. 그래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하고 새삼스럽게 기분을 전환하려던 김씨는 유튜브에 접속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를 검색했다. 그리고 다시 우울해졌다. 저작권 무시하고 남의 노래들을 목록으로 합쳐 게시한 이들의 동영상 조회수에 한 사람 몫을 더하여 그들의 통장을 불리게 해주어야 하는가? 꼭 그래야만 내 기분이 풀릴까? 하지만 김씨는 나약했다. 그래서 양귀자 <모순>을 팔꿈치 밑에 받치고 간미연 <파파라치>를 들으며 이런저런 글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교직이수를 결심한 계기는 뭣도 아니다. 앞날이 어찌 될 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수님들은 김씨를 포함한 학생들을 엘리트라고 부르지만 사실 김씨는 교직 자리가 비어서 추천을 받아 들어왔다. 별로 엘리트는 아니다. 사회 교육수준이 향상되면서 이제 옛 엘리트의 경계는 무너졌다. 그 쓸모도 실질적으로 허해졌다. 4년제 나온 잉여인력과 의무교육을 마친 기술자 간의 생명의 가치는 같지만 그건 이론적인 이야기일뿐, 사실상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것은 후자다. 어느날 사상 최악의 국가 재난사태가 발생해 벙커가 지어졌고 50명 수용인원중 한 자리만이 남았다면 사람들은 기술자를 끌고 와야한다. 안 가겠다는 걸 억지로 머리채 잡고 데려가야지 안 그러면 오래 못 산다. 공리주의에 패배한 학부생은 얌전히 좀비가 될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팔봉이가 4년제 나온 엘리트라느니 대단히 많이 배웠다느니 대학까지만 갈 수 있으면 엘리트였는데, 요즘은 인서울 상위 학벌에 대기업 임원이나 고위 공무직, 하여간 돈 되는 전문직이라야 엘리트 소리를 듣게 됐다. 그럼 우리는 김씨를 무어라 불러야 좋을까? S사이즈라기엔 들인 돈이 너무 많고 L리트까지는 못 갈 테니 적당히 엠리트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김씨는 슬퍼한다. 이름도 모르는 팝송을 들으며.
그건 화요일까지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수업시연서나 PPT가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며, 만나고픈 사람을 못 만나 슬프기 때문도 아니다. 김씨는 원래부터 슬펐다. 김씨는 더러운 기분에 휘말려 살면서도 늘 투쟁하려 노력하기 때문에 어제는, "성공할 때까지 실패하라" 따위 문구를 각인시켜주는 반지 공방에 써지컬스틸 반지 하나를 주문했다. 그러나 지친 김씨가 머릿속으로 해당 문구를 뇌까릴 때마다 문장은 "실패할 때까지 성공하라" 정도로 적당히 헷갈리게 산출되어 김씨를 더욱 더 괴롭게 한다.
김씨는 행복하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김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배신도 당해보고 미워도 해보고 미움도 받고 그렇지만 그 모든 걸 다 잊어버릴 만큼의 행복을 경험해서 그 단 한 순간에 속아 평생을 살길 바란다.
온 세상 김씨여, 세상과 싸우기에 그들은 너무 크다. 그러니 먼저 자신과 싸워라.
다음에는 김씨가 승리하였는지 패배하였는지에 관해 논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