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혓바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완 Jun 12. 2020

고양이는 가지 않았다

https://brunch.co.kr/@jaxtthal/17


 개는 갔으나 고양이는 남았다. 우리 가족은 지금 고양이 가족공갈단에 의해 보금자리를 약탈당하고 공물(사료와 물)을 바치며 그들이 가끔씩 거만하게 하사하는 뻣뻣하게 굳어 죽은 쥐 시체를 마당에서 자갈과 함께 퍼내 치우거나(어머니가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지르면 쥐 시체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그 털복숭이 악마를 상상하며 불안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있다.


 고양이네는 한부모가정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전시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는 중이다. 머리가 지극히 작고 눈이 대단히 큰 어미는 어젯밤 현관을 닫고 자려던 나와 눈이 마주쳐 후닥닥 차 밑으로 들어가더니 마치 CCTV처럼 나를 감시한 것으로 보아 은신과 관찰이 취미인 것으로 보인다. 흑갈색 줄무늬에 눈이 녹색이고 경계심이 몹시 심하다. 발걸음마다 악마적인 매력을 흩뿌리며 마당을 노니는 그의 임무는 자기 아이들을 돌보고 지키는 일인 모양이다. 그러나 유사시(창문 앞까지 나왔다가 가족과 눈이 마주쳤을 때, 혹은 차가 들어올 때)에 혼자 냅다 도망가는 것을 보면 이 어미의 마음이 어떤지 헤아리기도 뒤숭숭하다.


 가장 몸집이 크고 생기 넘치는 첫째 고양이는 소위 '치즈태비'로 불리는 노란 고양이다. 이 고양이는 범접할 수 없다. 빛보다 빨리 달리고 구름보다 높이 뛴다. 손바닥만한 것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잘도 뛰어논다. 그리고 앙칼지다. 꼬랑지와 엉덩이가 귀엽다. 마당에 놓인 자재들 중 파이프 안에 들어가 놀기를 좋아한다.(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혹은 셋째는 잿빛 고양이로 줄무늬가 나 있다. 첫째보다는 덜 자주 보인다. 마당에 내다놓은 밥그릇에 머리부터 허리까지 들이박고는 거의 반신을 그릇에 의지한 채 식사한다. 첫째보다 몸집이 조금 작다. 그리고 첫째와 아주 잘 논다. 유독 엄마와 붙어 다니는 첫째와 달리 상당히 독립적인 모양새다.


 셋째 혹은 둘째는 가장 허약해보이고 점프력도 얼마 안 되는지 가족들이 모인 선반 위로 올라갈 수 없어 혼자 남아 고개를 쳐들고 그들을 올려다 보고만 있었다는 가족의 제보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아이는 털 색도 미묘하고 무어라 정의하거나 묘사하기 힘든 개체다. 밥이나 물을 섭취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매번 멀쩡히 놀고 있는 걸 보면 어미가 신경을 잘 써주는 것도 같다. 가족간의 결속력이 뛰어나 보이는데 거기서 가장 소극적이고 겉도는 느낌이다.


 이 글을 다 읽었다면 알겠지만 나는 이미 공갈단에게 마음을 사로잡혀버렸다. 아직 팔뚝과 손등에 손톱자국이 남았는데 꽤나 귀엽게 느껴져서 조금 더디게 사라지기를 바랄 정도다. 고양이 시체 치우는 것보다 쥐 시체 치우는 게 나으니까, 해서 변명어린 손길로 사료를 채워놓기도 며칠 되었다. 눈에 보이면 밉고 얼른 떠났으면 싶다가도 안 보이면 그립다. 끝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낯선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