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3.
이야기를 쓰는 건 오랜만이다.
내가 글쓰기가 무서웠던 건지 글이 나를 피해 다닌 건지는 모르겠다. 늘 벽에 걸린 청바지를 보며 눈을 뜬다. 찢어진 청바지다. 바깥 냄새는 겨울밤.
옛날 살던 곳들을 그린다. 빗속의 로투스 이터스, 우유에 섞었던 복숭아 주스, 낡은 집, 기숙사 식당의 바깥, 치도리바시의 강이 흘러가던 풍경. 아침마다 들었던 노래들.
그때 나는 내게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들이 틀림없이 그리워지리라고 경고했었다. 귀납적 추론. 포럼에서 떠드는 사람들.
어쩌면 다시 글을 쓰기엔 너무 중요한 것들을 잃은 것 같다. 말과 말을 잇는 관절이 삭아서 없어져 버렸거나 어딘가 빠져나가버린 것 같다. 삶을 뛰는 동안에. 그래서 발바닥은 검게 타버렸고 나는 바나나 껍질처럼 발바닥부터 탈피해 매끈한 도자기 마네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