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벨로그
나는 필기용 공책이나 잡다한 다이어리를 살 때 반드시 맨 앞장은 비워놓곤 한다.
그건 표지 안쪽에 필기 흔적이 묻어 지저분해지는 것이 싫은 까닭도 있지만, 어쩐지 ‘대비했다’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아마 대학시절 휴학계를 내고 돌연 일본 유학을 이 년간 다녀왔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뭐든 많이 경험해봐야 할 것 같았다. 남들보다 많이 배워두고 느껴둬야 ‘뭔가’에 대비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 그 ‘뭔가’는 당최 ‘무엇’이었는지? 성적이 남는다는 조교님 제안에 대뜸 교직이수도 해보고(교생실습은 재미있었지만 교육봉사가 아주 힘들었다! 이 글도 봉사처 마지막날 쉬는 시간에 작성하는 중이다), 운 좋게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어 각 분야 교수님들로부터 티칭 실력도 인정받았다. 교직이수를 하기 전까지는 일본에서 살면서 한국 아마추어 작가들과 함께 프로젝트 출판을 여러 권 했다. 글쓰기는 어릴 적, 그러니까 일곱 살 때부터 좋아했다. 가벼운 역할극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시, 소설, 에세이 등을 써보고 지금은 브런치에 영화 평론도 올리는 중이다.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이 글은 내 자기자랑이다. 동시에 쉽게 자만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한 셀프 가이드라인이기도 하다. 겸손이 과하면 비굴해지고 자신이 과하면 자만이 되는, 중용 어드메에 적혀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무래도 사회생활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골기질이 강했던 고등학생 시절, 사람은 사람들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분명 코웃음을 쳤었는데(날마다 지구가 멸망하기를 바랐다) 지금은 사람들이 없으면 지구가 어떻게 될 지 눈앞이 캄캄하다
하여간 그 무렵, 어설프게 자작 웹사이트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티스토리처럼 일부 요소가 정해져 있어 디자인의 통일감을 해치는 분위기는 싫었기 때문에 구글에서 주운 가이드에 따라 나모 웹 에디터와 알FTP, 제로보드 같은 것으로 얼기설기 엮어 만들었다. 첫 홈페이지 이름은 ‘couch potato’였다. 참 느긋한 작명 센스였다. 언니와 함께 교환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운영하다가 학업에 치여 방치된 틈을 타 사라지고, 그 다음 홈페이지는 일본에 있을 적, ‘homoserius’ 즉 ‘심각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메인 페이지나 카테고리가 있는 프레임은 직접 포토샵을 사용해 디자인했지만 아직 웹 개발에 그렇게 관심도 없었을 때고, 그저 내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이해하는 사이버 공간이 하나 있었으면 했기 때문에 게시판은 아무 제로보드 스킨이나 받아다 썼다. 그 결과 긴 글을 업로드하자니 가독성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돼 다시 사이트를 방치했다. 이 과정에서 무료로 배포된 스킨이나 디자인들을 직접 고쳐보는 건 좋은 공부였지만 아무래도 머릿속이 순수한 채로는 그리 효과적인 공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아보카도 에디션’이라는 것이 유행을 타면서 다시 한번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비교적 최근이지만 이것도 벌써 몇 년 전 이야기다. 아무튼 난, 뭔가 다른 어쩌구 보드나 어쩌구 에디션 말고 내가 전문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생각했다. 그러면 애착을 가지고 방치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코딩을 시작해보기로 하였고…
C언어 독학, 파이썬 독학 등을 거쳐 스파르타코딩클럽 웹개발 종합반을 찾게 됐다. C언어와 파이썬이라니 멋져 보이지 않는가? 내가 저 두 가지로 해낸 유일한 활동은 더하기와 곱셈뿐이다. 요리 독학도 어려운 내가 혼자 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여간 내가 한 달 동안 업로드 할 글들은 바로 이 스파르타 코딩클럽 내일배움단을 통한 개발일지인데, 제목과 서두처럼 어떤 페이지든 맨 첫 장은 공백으로 남겨두는 습관 탓에 강의 이전까지 내가 뭘 하고 살아왔는지부터 적어보고자 했다. 이 급한 성격에 올 여름 대학 졸업까지 분명 수강을 다 해놓긴 하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공부하면서 개발이란 것을 깊이 이해해 볼 작정이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좋을 지 고민하던 딱 좋은 타이밍에 학생이 한 명 찾아온 것 같다.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