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우울했다. 우선 생각이 너무 많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존재보다 나아 보였다. 늘 먼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특히 무서운 영화를 보았을 때….
처음 정식으로 우울증 진단이 나온 건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학교와 연계된 외부 업체에서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감정했을 때였다. 그때 이 사실을 주변인에게 알렸더니 우울증 검사를 진행한 그때 그 당시만 잠깐 우울했던 게 아니냐며 부정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우울한 대신 겉으로는 과할 정도로 말을 많이 하고 남을 웃기려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엉뚱한 개구쟁이 이미지를 고수했다. 아마도 그게 나만의 처세였다. 그러나 그런 처세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고 결국 지금에 이르러서는 일부러 바보인 척을 하는 습관만 낳게 됐다.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내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얘기해보겠다.
현재 나는 기나긴 인고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소소한 액수를 벌며 절찬리 백수로 생활중이다. ‘미라클 모닝’ 하고 싶지만 매번 오전 9시에 일어나고, 에세이를 쓰거나 소설을 쓰며 시간을 보낸다. 사실 대부분은 침대에 누워 멍하니 동영상 사이트를 전전한다. 크게 곤란한 일도 크게 슬픈 일도 없다.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전화 영어를 한다. 나의 필리핀 선생님 벳시와 함께. 하기 싫어 죽겠지만 죽을 순 없으니 그냥 어쩔 수 없이 한다. 자기 전에는 숨이 찰 정도로 운동을 하다가 씻고 일기를 쓰고 잔다.
다시 우울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처음으로 세상을 뜨려는 시도를 했던 게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가물가물한데, 수학 시험을 망쳤던 것 같다. 시도한 순간 마침 아버지가 귀가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몇 년간 줄곧 그 실패의 기억을 가지고 살았다. 그로부터 십 년 후 병원에 다니고 자취를 시작하며 스물 중반 쯤 오랜 저주가 끝났다.
미리 말해두지만, 우울증에 완치는 없다. 저주가 끝났다는 것은 저주와도 같던 과도한 생각과 우울감이 전보다 훨씬 완화되었다는 의미다. 느닷없이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에 과호흡을 견딜 일도 가만히 누워 눈물을 흘릴 일도 없어졌다. 나는 괜찮게 살고 있고 바로 그게 내 목표였다. 일단 살아 있어보니 어느샌가 목표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적어도 최근 일 년간은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전혀’까지는 과장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전까지는 심각하게 죽음에 대한 생각에만 매몰된 채 살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내 일상에 죽음은 완벽히 배제된 채, 몇십 년 뒤에나 올 머나먼 것으로 생각되며 숨을 죽이고 있다. 높은 곳만 보이면 뛰어내리고 싶던 내가 평온한 일상을 보내게 된 사연을 천천히 나누어보려고 한다. 이 글이 나처럼 숨 쉬며 사는 법을 우울에게 빼앗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나는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팁이나 방법 같은 걸 나누려는 게 아니다. 그런 게 있다면 당장 내가 먼저 갖고 싶다. 단지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이, 같은 세계를 보며 살아간 적 있다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알기 때문에 단순히 말을 걸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상처가 있어도 즐겁게 살 수 있다. 인간은 망각이 있어 다행인 동물이다. 망각은 반드시 언젠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건 당신의 상처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세계가 넓어졌을 뿐이다. 이제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20여년에 걸쳐 넓어진 내 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